3월말 시마네(島根) 현의회의 독도조례 통과이후 악화할 때로 악화한 한일 양국민의 감정, 북한 핵문제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양국간 공조, 그러나 식지 않는 한류(韓流) 붐… ‘우정의 해’를 맞은 한일관계는 이처럼 국민감정과 안보, 대중문화 등 분야마다 각각 다른 모습을 띤 다층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분쟁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한일관계를 풀어갈 방안은 이런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4일부터 이틀간 일본 교토(京都)의 리츠메이칸(立命館) 대학이 주최한 ‘동북아시아와 현대 한국ㆍ일본’ 심포지엄은 한일관계의 입체성을 분석하고 갈등 해소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심포지엄은 한국일보와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오사카(大版) 본사, NHK 교토 방송국 등이 후원했고, 양국의 정계 학계 관계 인사가 참석했다.
◇ 일본 역사 왜곡에 대한 일 학계의 반성과 한ㆍ일관계의 보존방안
미야모토 켄이치 (宮本 憲一) 리츠메이칸대 석좌교수는 “일본의 역사인식 왜곡 문제는 전쟁이전 세대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면서 “후대들도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불완전한 입장표명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은 일본 정치인들이 하지 못해도 시민운동단체를 중심으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넓은 편”이라면서 “한국이 이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앤드류 호밧 도쿄경제대 객원연구원(전 미 아시아재단 일본지부장)은 “더욱 심각한 것은 역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역사문제를 국내 인기 만회용 카드로 사용한다면 국가간 관계개선을 기대할 수는 없다”면서 “유럽의 경우를 보면 국가 외교는 과거 역사와 단절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역사에 대한 담론은 학계 등 교육자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며, 정부기관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여지는 많지 않다”고 최근 한중일 분쟁에 대한 훈수를 두었다.
특별 강연에 나선 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은 “최근 일본과 한ㆍ중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것은 일본의 굴절된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후손들이 올바르게 기억하고 교훈을 얻도록 하는 것이 일본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 '북핵 문제' 의 주도권과 대미관계
타니노 사쿠타로 (谷野 作太郞) 전 주중일본 대사는 “북한 핵 문제해결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4개국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당사자인 남북이 중심이 돼 이를 주도해야 한다”면서 특히 “남북이 향후 시나리오를 만드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니시미야 신이치(西宮伸一) 일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미국은 핵 억지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동북아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비판하고 “6자회담이 동북아 안전보장의 결실을 이루는 첫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 한류가 한일관계를 바꿀 수 있는가.
참석자들은 식지 않는 한류붐이 정치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황성빈리츠메이칸대 조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본 지식인과 미디어는 한류 붐을 통해 스스로가 아니라 한국과 한국인이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류붐의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이른바 ‘근대화론적 발전단계설’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한국의 70년대 라면 한국은 일본의 70년대라는 설명이다.
특히 겨울연가의 내용은 70년대 소녀만화 같고 주연배우는 왕년의 일본 배우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구매층으로 부터 소외됐던 일본 중년 여성들이 현실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고 팬터지와 소비의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겨울연가가 이들에게 해방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원:한국일보·아사히신문 오사카 본사·NHK 교토 방송국
교토=장학만기자 local@hk.co.kr
■ 서승 리츠메이칸大 한국학 연구소장
“새 연구소가 일본의 한국학 연구에 한류와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05년 역사를 가진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의 명문사립대 리츠메이칸대학은 이번 심포지엄과 함께 한국학연구소(RCKS)를 개설했다. 초대 소장으로 임명된 서승(60) 법학부 교수는 26일 “7월 중순에 일본 학생들의 한국 현장체험을 시작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평가를 다룬 한일공동연구서를 발간하는 등 활동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츠메이칸 대학은 재일동포를 포함해 한국 학생이 450명이나 되는 개방적인 학풍의 대학. 한국학 연구소 설립은 일본에서도 1998년 큐슈(九州)대에 이어 2번째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선 일본인에게 정확하게 한국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서 교수의 지론. 그는 “매 학기마다 한국학에 대한 일본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며 “한국의 정치ㆍ사회ㆍ법 강의의 경우 법학과 학생들을 포함 120명 정도가 수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재일동포로 도쿄교육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유학(석사과정)했던 서 소장은 보안사가 조작한 1971년 ‘재일교포 학생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9년간 옥고를 치렀다.
쿄토=장학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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