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의와 클래식음악은 아주 친해보인다. 둘 다 오랜 세월을 버텨왔고 어쩌면 상호의존적으로 살아왔다. 이러한 클래식 음악도 그 발전의 역사를 만들어 낸 주인공들은 '변화'를 추구해온 이들이었다.
이 칼럼은 그동안 그런 변화의 가능성들을 제기해왔다. 작게는 팸플릿이나 포스터 같은 공연홍보물의 혁신부터 연주자들의 전달방식, 클래식을 대하는 청중들의 개념 등에서 변화가 필요함을. 이제는 클래식 음반의 변혁을 생각해볼 때다.
아티스트 입장에서 볼 때 클래식 음반은 콘서트와 마찬가지로 아티스트의 생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어쩌다 대박 나는 음반이 있기는 하지만, 정통 클래식으론 힘들다는 게 통념이다.
대중음악 음반에 비해 '그들'이 덜 노력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이 누굴까? 아티스트를 포함한 기획, 유통 관계자 모두이다.
연주자인 나는 몇 년 전 음반을 낼 생각으로 음반 유통 관계자와 상의한 적이 있다. 그가 이런 충고를 해줬다. "일반 클래식 음반을 내지 말고 기획음반을 내세요. 그게 돈이 됩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돈 얘기 때문도 아니며, 세미클래식에 대한 그들의 숭배 때문도 아니었다. 기획음반이라니, 그럼 어떤 음반은 기획을 안 하고 만든단 말인가? 물론 표현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클래식 음반의 자켓 디자인을 보라. 연주자들이 악기를 든 증명사진 아니면 드가풍의 수채화 하나 덜렁 있는 표지는 훌륭한 전통일까? 뒷면엔 '백지'에 쓰여있는 악장 제목들 뿐이고, 속지엔 8포인트 활자로 깨알 같이 박힌 논문 같은 곡 해설과 작곡자 흑백사진 한 장 뿐이다. 기획자나 제작자들은 편할지 모르지만 음반 소비자에게도 그럴까.
반면 열악한 환경에서 음반으로 승부를 거는 대중음악은 기획에 목숨을 건다. 우리는 그들에게 질 수밖에 없다. 클래식 음반이 과거의 명성(에디슨 축음기를 독점해버린 순수예술)을 되찾으려면 변화해야 한다.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세운 전통을 처음부터 다시 걸러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전통에 도전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다. 단순히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전통주의자들에게 매장당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다.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여러 가지 기술적, 사회적 이유와 편의성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모하게 전통 파괴를 시도하는 작업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지 못하고 끝나고 만다. 그러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통은 오래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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