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위령 여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위령 여행

입력
2005.06.28 00:00
0 0

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 부처가 마리아나 군도 사이판을 방문했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위령 여행’으로, 일본 천황이 과거 식민지 지역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오늘 일본정부가 건립한 ‘중부태평양 전몰자비’에 헌화하고, 집단자살 무대였던 ‘자살절벽’과 ‘만세절벽’, 미군과 현지주민을 추모하기 위한 ‘미국 위령공원’에도 발길을 옮긴다.

앞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한일정상회담 직전 유황도(硫黃島ㆍ일본명 이오시마)를 방문한 바 있어 마치 패전 60주년 ‘위령 여행’을 분담한 듯하다.

■1944년 6,7월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의 90%, 일본인과 현지 차모로인 등 민간인 60%를 합친 6만여명, 미군 1만5,000여명이 숨졌다. 사이판 전투의 참혹상은 이듬해 2월의 유황도 전투에 그대로 이어졌다. 미 해병대가 섬 정상에 깃발을 꽂는 사진으로 유명한 72일 간의 상륙전에서 일본군 2만여명과 미군 7,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벌어진 오키나와(沖繩) 전투의 참상은 더했다. 약 6만5,000~10만명의 일본군, 약 1만2,000~4만7,000명의 미군, 10만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돼야 했다.

■세 전투에 휘말린 한국인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만 군인과 민간인 등 1만명 넘게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판에 노동자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5,000명이 넘는다.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것은 오키나와 이토만(絲滿)시 평화기념(祈念ㆍ기원)공원에 서 있는 ‘평화의 초석’이다.

오키나와 전투 희생자 23만여명의 이름을 군인과 민간인, 국적을 가리지 않고 새겼다. 한국인 희생자 423명의 이름도 들어 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진정한 ‘희생자’와 ‘부역자’를 가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모두를 역사의 희생자로 여기는 추모 형태다.

■일본 천황의 사이판 방문을 보는 한국민의 눈길이 싸늘하다. ‘미국 위령공원’ 방문이란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참혹한 희생의 직접 원인인 전쟁 자체에 대한 반성보다는 결과적 희생을 마음 아파하는 데 치중하리란 짐작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의 이유로 내세운 ‘희생자 추모와 부전(不戰)의 다짐’이 한중 양국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진정으로 그런 다짐이라면 지나친 비장감이 묻어나는 사이판이나 유황도가 아니라 ‘평화의 초석’을 ‘위령 여행’의 종점으로 삼을 일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