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투기지역 지정.’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투기지역 지정 제도에 대한 실효성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27일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를 열어 주택ㆍ토지 투기지역을 무더기로 신규 지정, 전국 247개 시ㆍ군ㆍ구 가운데 32%인 79개 시ㆍ군ㆍ구를 투기지역으로 묶었지만 정작 부동산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들은 대부분 행정중심 복합도시나 공공기관 이전, 기업ㆍ혁신도시 건설, 경제특구 등 정부 개발계획이 발표된 지역 주변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고 이를 다시 투기지역으로 지정하는 자승자박형 투기억제책을 쓰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효성
투기지역 지정은 양도세를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부과해 투기 수요를 억제하자는데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2007년부터는 전면 시행돼 투기지역 지정으로 인한 투기 억제 효과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또 최근 부동산 투기와 관련한 각종 규제책이 시장의 내성을 키워 투기지역 지정이 과거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부동산 과열의 진원지로 꼽힌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 등은 진작부터 투기지역으로 묶였지만 부동산 급등세가 꺾이지 않았다. 투기지역 지정만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결국 값이 더 많이 올랐던 과거 경험에 비추어 규제지역으로 묶인 것 자체가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은 정부의 규제지역 지정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책임
부동산 값이 전국적으로 들썩이면서 수도권과 충청권에 집중돼 있던 주택ㆍ토지 투기지역 지정이 방방곡곡으로 확산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이어 공공기관 지방 이전, 지방 혁신도시 건설 등의 호재가 전국에 걸쳐 쏟아지면서 국지적 강세를 보인 부동산값 폭등세가 전국토로 번졌기 때문이다.
4월말 현재 전국 땅값은 개발 호재를 업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월에 비해 0.52% 올라 올들어 가장 높은 월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행정중심 복합도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ㆍ공주지역은 각각 1.92%, 1.39%의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수도권지역도 전월에 비해 0.68% 올랐다.
정부가 땅값이 오르는 지역에 대해서 투기지역이나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으로 묶어 가격 상승을 차단하겠다고 칼을 빼 들었지만 잇따라 쏟아지는 굵직한 지방 개발 계획들은 오히려 지방 부동산값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결국 정부가 손대는 곳마다 가격이 오르고 이로 인해 정부가 다시 투기지역을 만들어 내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풍선효과
투기지역 지정은 인근 땅값도 올린다. 토지거래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 곳으로 거래가 몰리면서 값이 오를만한 호재가 없는데도 주변 가격이 덩달아 뜀박질한다.
27일 토지투기지역으로 신규 지정된 경기 안성시의 경우 4월 한달간 상승률은 1.058%로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25곳 중 가장 높다. 인근 평택이 개발되면 주거 수요가 안성으로도 몰려 와 덩달아 땅값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땅값이 오르는 지역을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땅값을 잡겠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 급등 지역을 확대 재생산하는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토지전문 컨설팅 업체인 JMK플래닝의 진명기 사장은 “투기지역으로 묶이면 해당 지역이 한동안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등 일시적인 진정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주변 지역 땅값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혁신도시 건설이 본격화하면 지방 수십여 곳이 투기지역으로 묶이고 주변 지역이 따라서 급등하는 악순환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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