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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기 지금] 인터부 거부해온 김기덕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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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기 지금] 인터부 거부해온 김기덕 감독 인터뷰

입력
2005.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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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그는 인터뷰 거부를 선언했다. 열 두 번째 영화 ‘활’의 개봉을 앞두고 였다. 무엇이 그의 입을 닫게 하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쁘다’고 써줘도 광고가 되는 시대에 미리 미디어에 소개되는 시사회조차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속내를 들어보기란 쉽지 않았다. ‘10년 지기’를 앞세워도 김기덕(45) 감독은 한사코 거절했다. 기자와 만남은, 그 관계가 아무리 ‘특별’하더라도 결국 ‘인터뷰’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 이렇게 만나는 것 또한 삶이라며 그는 ‘말하기 싫은 자’의 고통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인터뷰 거부 이유부터 궁금했다. “총체적 말 줄이기”라는 그는 말의 허망함과 지겨움, 그 무책임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도 얼굴 보여주기, 인터뷰가 관객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이는 길이라고 생각해 열중했다. 영화를 설명하려 바둥거렸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어차피 영화는 영화로 설명되고, 보는 자의 몫이다. 내 말이 오히려 ‘관람 방해’다.”

말이란 뱉어버리면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다. “내가 한 말을 내가 못 지킨다. 과거에 당당하게 정답이라고 말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왜 그렇게 말 했을까’ 후회하지만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새끼를 쳐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를 공격한다. 말이야말로 지우개가 필요한데, 없으니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이미지가 영화 밖에서 끝없이 복사되는 것도 싫었다. “어딜 가도 김기덕은 알아보는데, 내 영화는 안 본다. 김기덕의 삶의 방식과 의지는 좋아하는데 내 영화는 싫어한다.” 지난해까지 나가던 서울예술전문대 강의도, 4월 서울대를 끝으로 특강도 끊었다. 혹자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처럼 긴 글로 칭찬해 주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웃기는 얘기다. 그럼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뭔가. 자신의 사고의 폭과 글 수준부터 되돌아 봐라. 해외라고 다르지 않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도 40~50개 개별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하나도 안 했다. 했던 말 또 하고 지겹다. 영화 찍기보다 힘들다.”

인터뷰는 그렇다 하더라도 시사회까지 하지 않고, 광고 하나 없이 더구나 자기 힘(배급)으로 달랑 2개 극장에만 영화를 거는 것은 또 무슨 배짱인가. “기자, 평론가도 관객이다. 가면을 벗고 의무에서 벗어나 순수한 관객 마음으로 찾아와 돈을 내고,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글을 써보라는 취지였다. 그게 아니라면 내 영화 안 봐도 된다.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3억, 4억원 들여 광고하고 여러 극장에 걸어 보러 오도록 서비스해가며 보게 하고 싶지 않다. 극장을 찾아올 애정이 없다면, 나중에 비디오나 DVD로 봐라.”

결과는 어땠을까. ‘활’은 관객 1,500여명으로 끝났다. 그러나 김기덕은 단호하게 ‘참패’가 아니라고 했다. “3억원의 마케팅비를 들여 몇 만 명 보게 해 2억원 손해 보는 것 보다 2,000만원 들여 1,500만원 손해 보는 게 낫다. 이게 그나마 투자자 돈 지켜주고, 해외수익금을 까먹지 않는 방법이다.”

일본의 해피넷이란 곳에서 6억원을 투자 받은 ‘활’은 베를린영화제에서 7억원, 칸영화제에서 2억3,000만원의 판매수익을 올렸다. 영화사 김기덕필름의 경상비(4억원)까지 해외에서 모두 건진 셈이다. 그걸 ‘빈집’ ‘사마리아’처럼 무리한 국내 배급과 광고로 까먹는 바보짓은 이제부터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활’이 김기덕 영화의 개봉 현주소와 지혜를 알게 해주었다.”

김기덕은 저예산영화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해외에서 인정 받은 그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몇 백억원짜리 프로젝트 투자도 가능하다. 실제 유럽에서 구두 약속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적당히 오리엔탈리즘으로 포장해 월드 관객을 끌어 모은들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영화는 한국에도 차고 넘친다. 그걸 위해 남의 돈 쓰고 싶지 않다”는 게 김기덕의 생각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작은 1억, 2억원짜리 초저예산영화를 하고 싶어한다. 해외(일본)투자가 가능하지만 그 역시 돈만큼의 책임감과 부담이 있기에 가능하면 자신이 번 돈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주제를 명확이 말하기에는 작은 영화가 더 좋다.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으로 접근하기 쉽고, 나로서는 그 방식이 더 흥미롭다. 신인배우, 소재, 촬영방식에 관한 노하우가 있으니 많아도 5억원이면 충분하다.”

결국 ‘소통’의 문제였다. 그가 입을 닫은 것도, 그가 저예산영화로 끈질기게 ‘특수상황’의 도발적인 방식으로 말 걸기를 시도하는 것도. “내가 만들었지만 영화는 보는 사람의 삶의 환경, 의식수준에 따라 보인다. 불신과 편견을 걷고, 스스로 소박하게 느껴질 때 마음의 문은 넓어진다. 연민도 나온다. 노인과 어린 소녀의 사랑이란 같은 주제를 다룬 ‘활’과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다르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열 두 편의 영화를 거치면서 그의 마음은 분명 깊고 넓어졌다. 그 증거가 데뷔작 ‘악어’의 난폭함을 연민으로 다시 기억하게 만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감독 김기덕은 열 두 고비를 넘어 다시 큰 고개를 넘기 위해 서 있다. 4년 전 구입한 강원 홍천 골짜기 밭에 포클레인을 손수 조작해 도랑도 파고, 야채도 가꾸는 그는 요즘 갇힌 음식을 생각한다.

“양계장, 비닐하우스, 가두리양식 등 갇힌 음식 뿐이다. 갇힘은 곧 스트레스이고, 음식이 사람의 몸과 정신을 만든다. 자연성을 되찾아야 한다. 내 영화 기초 역시 원시성, 본능성이 아닌가. 그것이 대중성을 이유로 말살된다면 나 혼자라도 생태적으로 살겠다.”

그에서 뭔가 곧 나올 것 같다.

이대현 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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