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장마의 시작인가? 서양 속담에 하늘이 비를 내리기로 결정하고, 어머니가 재혼하기로 마음먹으면 막을 도리가 없다 했는데, 7월은 아무래도 눈부신 비의 창살에 감금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슴 파고드는 이 슬픔은 무엇인가?’ 이 기간 베를렌의 시가 창 밖을 내다보는 사람의 시야를 흐리게 하지는 않을는지? 현실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탈출을 선동하지는 않을는지?
다행히 막 일본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궂은 날씨가 시작되니 고맙단 말도 못하고 기억 속에 잊어버린 해에게 감사한다. 햇살 속에 눈부셨던 오사카의 쌓아올린 기와지붕과 교토의 금각사가 눈에 선하기만 한데, 일요일 저녁 돌아와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게 되니 참으로 묘한 것이 역사요, 여행이다.
역사 자체도 여행이건만, 움직이는 것을 움직이면서 보고 돌아오니, 나의 서재도 비행접시처럼 움직이면서 운전대만 잡고 움직일 줄 모르는 내 생각의 신호만을 기다리는 듯 하다.
나의 일행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징비록’을 영역한 나는 여행 도중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롯해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토 기요마사, 우키다 히데이에 등 임진왜란의 중역들을 끊임없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삶의 여정은 한편의 드라마요, 파란만장한 굴곡과 희비의 연속이었지만, 이들이 쌓은 성과 절은 삶에서 ‘허무’라는 메시지만을 전하고 있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는 망각에 가까운 침묵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기에 노부나가나 히데요시, 이에야스는 여전히 대다수 일본인들의 영웅이었다. 그들은 자신과 사우고 허무와 싸우는 사무라이의 신이 되어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히데요시는 물론 이에야스를 배출한 나고야의 도요타는 새로운 현대판 사무라이였다. 인근의 나고야대는 도요타와 손잡고 신세대 사무라이를 육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검과 조총을 돈과 기술로 바꿔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었다.
한국은 때마침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일본과 한판 승부를 겨루는 듯했다. 비록 열세지만,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꿈꾸며. 이제 막 시작한 장마는 1년 내내 계속될 수는 없으며, 지금은 가난해도 평생 가난할 수만은 없으리라. 가난도 가난하다 보면 지치게 될 것이고, 우리가 만든 거북선이 거친 숨결을 토할 날이 어찌 멀기만 하리?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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