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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야스쿠니에는 전범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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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야스쿠니에는 전범이 없다?

입력
2005.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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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쿄(東京)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방문했다. 한일 관계에서 시한폭탄처럼 돌출하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를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의 ‘유명세’때문일까, 다소 긴장한 마음으로 돌아 본 신사는 일본 특유의 엄숙함과 비장감이 가득했다. 1882년 만들어졌다는 일종의 군사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의 시대착오적인 전시내용에는 섬뜩함 마저 느꼈다. 한마디로 일본의 침략전쟁은 “자존자위(自存自衛)를 위한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는 것이 중심 메시지였다.

신사를 빠져나오며 “야스쿠니는 침략전쟁에서 패한 일본인들의 열등감과 억눌린 분노, 증오가 한데 엉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동행한 일본의 지인은 “야스쿠니는 일본 군국주의의 본거지, 유슈칸은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정신교육장”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야스쿠니 신사가 지난주, 침략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도쿄 극동국제군사재판소가 처단한 A급 전범이 “범죄자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후 전범에 대한 국회의 사면결의가 몇 차례 있었고, 유족원호법의 개정으로 전범도 전몰자와 같은 보상을 받게 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일본이 패전 후 살아 남기 위해 받아들인 도쿄재판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도 했다.

일반 사람들의 보편적인 상식으로 생각한다면 어이가 없는 것이지만, 야스쿠니의 입장에서는 전혀 새롭거나 특별한 주장이 아니다. 유슈칸에서는 지금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 대참사를 불러일으킨 원흉은 미국”이라는 비디오가 매일 상영되고 있다. 야스쿠니의 역사관은 일본 극우단체가 만든 후소샤의 역사교과서에도 거의 그대로 반영돼 있다.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나온 야스쿠니의 이번 주장은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지를 만천하에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야스쿠니가 역사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뉴욕타임스가 22일자에서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주만 공격을 일본에 강요했다”는 야스쿠니측의 주장을 소개한 뒤 “야스쿠니의 역사관은 아시아인, 미국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향후 자세다. 전후 형성된 국제질서 마저 부인하는 일본의 우경화를 방관하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위태로워진다. 또 일본이 어느 국가와도 ‘미래지향적 관계’를 맺기는 힘들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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