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단지 부녀회 등의 집값 담합이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의 주 요인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단속해야 할지 여부를 놓고 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부녀회 담합 단속 논란은 청와대 관계자가 지난 주 “아파트 주민들이 담합해 시세를 조정하는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은 검토할 만한 대책”이라고 밝히면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재정경제부와 공정위 등 관련부처는 “규제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다”며 다들 난색이다.
부녀회 담합
26일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부처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 및 수도권 신도시 일부지역에서 이뤄지던 부녀회를 통한 가격담합이 강북ㆍ수도권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중개업자는 “최근 반상회나 아파트단지 내부 모임을 통해 일정 가격 이하로 집을 팔지 말자고 주민들이 의견을 모은 후 아파트 값이 3,000만∼5,000만원씩 갑자기 올랐다”며 “한 단지에서 가격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옆 단지에서도 따라 하기 때문에 결국 그 지역 아파트 값 전체가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중개업자는 “강북에서도 6억∼10억원대의 고가 아파트의 경우 부녀회를 통한 가격 담합이 종종 이뤄진다”며 “부녀회 결정에 따르지 않는 중개업자는 지역에서 왕따를 당해 당장 중개의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매도자가 시장 주도권을 쥐면서 이런 담합이 확산되고 있다”며 “아파트 주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여러 지역의 가격 동향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담합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엔 기획부동산업체 등이 가세한 기업형 가격담합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당국 입장 부녀회 등을 통한 가격 담합 현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이를 규제할 수단이 없어 끙끙대고 있다.
공정위는 2002년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구의 9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집값을 담합한 부녀회와 중개업소 등에 대해 현장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는 부녀회 등의 조사거부와 증거 부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가격담합에 대한 시정조치는 사업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부녀회 등에 직접적인 시정조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결국 건설업체의 신규 아파트 분양가 담합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나설 수 있으나, 부녀회 등을 통한 기존 아파트 값 올리기는 ‘담합’으로 처벌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역시 “아파트 가격 담합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판단아래 내부 검토를 해봤으나 관계법률인 소비자보호법 등으로는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기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설사 부녀회의 압력에 의해 특정 개인이 계약을 파기해도 계약금을 물어주면 법률적으로는 피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아파트가격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법률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처벌의지만 확고하다면 제도 개선 이전에도 단속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가격 담합에 있어 부녀회와 중개업체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낸다면 현행 법령으로도 단속이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다”라며 적극적인 단속의지를 내비쳤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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