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7,000년 전 우리의 조상들에 앞서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이래 1,400여년 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가 되었다.
2003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43.8%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로 뽑히기도 했던 소나무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로 시작하는 애국가 가사에서도 드러나듯 우리 민족과 고락을 함께 해온 나무다.
척박한 토양에서 오히려 더 잘자라는 소나무는 여러 차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단일 민족을 유지해온 우리의 모습 그 자체다.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소나무는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도 주요한 나무로 인식되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책임 편찬한 ‘소나무’는 소나무를 현미경 삼아 한중일 3국의 전통문화와 사상 그리고 현재를 세밀히 들여다본다. 일어일문학과 국어교육학과 한문학과 고고미술사학과 산림자원학과 등 다양한 전공의 국내 교수들을 비롯해 문화관광부 문화재 전문위원과 일본 오하라 미술관장 등 23명의 저자들이 참여한 만큼 방대하면서도 깊이 있는 접근이 눈에 띈다.
책은 목(木)과 공(公) 두 글자로 이루어진 한자 송(松)을 분석해 유교문화와의 관계를 풀이한다. 공이 고대중국의 벼슬 품계를 나타내는 글자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소나무는 높은 신분을 의미하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소나무가 유교사회의 사대부 문화를 반영하지만 사군자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벼슬과 관련된 이런 이미지 때문이다.
저자들은 소나무가 유교뿐만 아니라 인생무상을 나타내는 불교와 불로장생의 도교, 그리고 민간풍속과도 맞닿아 있다고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나무가 성주(집을 지키는 신)를 받드는 의식에 사용될 만큼 신격화된 나무이며 동시에 인간 세상의 안전과 집안의 번창을 도와주는 나무로 인식돼 왔다고 설명한다.
풍수신앙에서도 소나무는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조선시대 궁궐에 소나무를 심어 가꾸고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고 왕의 무덤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묘 주변에도 소나무를 심었다고 부연한다.
일본에서는 소나무를 ‘신성한 영이 깃든 나무라’하여 영목(靈木), 또는 신목(神木)이라 칭하며 우리보다 더 신성시한다. 소나무의 일본발음 ‘마츠’는 ‘신을 기다린다’에서 유래되었다는 해석이 있을 정도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새해를 맞으면 집집마다 가도마츠라는 소나무 장식을 세워두고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은 금줄에 소나무 가지를 끼워넣는 우리의 전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종교와 사상과 연관된 소나무의 상징뿐 만 아니라 문학과 설화, 그림과 도자, 생활 등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며 소나무에 얽힌 동북아 3국의 문화코드를 밝혀낸다. 책은 2003년 출판사 생각의 나무에서 첫 권 ‘매화’만 내놓고 중단된 ‘한ㆍ중ㆍ일 문화코드 읽기’시리즈의 두 번째 권으로 나왔다.
이 전 장관은 “우리가 서 있는 문화의 기반이 무엇이며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 왔던 근대화, 서구화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른 것 인지부터 깊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 시리즈를 기획했다.
한중일 3국 문화를 대상으로 한 것은 “3,000년 동안의 교류를 통해 문화를 나눠왔지만 중화사상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지배이론 때문에 동북아의 문화적 가치가 편향되고 왜곡돼 왔다는 안타까움에다, 동북아시아 지역문화의 그 동질성과 특성을 새롭게 물어야 할 소명” 때문이다.
‘소나무’는 문화백과사전이면서도 공통된 소재 하나로 3국의 지난 시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 서적의 성격을 띤다.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의 모여 만든 책인만큼 3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만하다. 그러나 ‘쇠락’을 ‘쇄락’으로 표기하는 등 잘못된 교정과 교열이 책의 무게감을 떨어뜨려 아쉬움이 남는다.
시리즈를 이어받아 1년 3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이번 책을 펴낸 도서출판 종이나라는 다음달 ‘대나무’를 비롯해 한달 간격으로 ‘국화’ ‘난초’ 등을 계속 출간하며 십이지를 다룬 12권도 이어서 선보일 예정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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