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를 읽다 보면 체제의 치밀함과 문장의 탁월함에 감탄을 금하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읽다가 문장의 깊은 묘미를 발견할 때 느끼는 재미는 숨은 보물을 찾아내는 짜릿함이랄까.
그런데 ‘사기’ 문장은 선진시대까지는 전승된 자료를 활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라 판단되기에, 사마천의 독창적 문장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나라 건국 이후 부분이 적합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사기’는 사마천과 한 무제의 악연을 그 밑에 깔고 있는 책이다. 그가 흉노에 항복한 이릉이라는 장수를 변호하다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궁형(宮刑ㆍ거세형)이라는 치욕스런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사가들은 무제에 대하여 원한을 가졌는가 아닌가, 나아가 무제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기록할 수 있겠는가 회의하기도 하고, 심지어 ‘사기’는 무제에 대한 비방을 쓴 책이라 폄훼하기도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사마천은 ‘사기’에서 개인적 호오(好惡)를 감추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인해 기록의 객관성은 잃지 않았다. 다만 소인(小人)의 마음으로 군자(君子)의 흉중을 헤아리다 보니 이런저런 오해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적으로 보아 무제는 많은 일을 벌인 군주로 그의 치적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붙어 다닌다. 무제의 가장 큰 단점은 개인적인 감정에 휩싸여 형벌을 남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그가 혹리(酷吏)를 등용하여 공포정치를 주도해 나가는 모습이 ‘사기’의 ‘혹리열전’을 통해 여지없이 고발되고 있다.
이런 내용이 있다. 왕온서라는 자는 사람을 얼마나 죽이는지 한 고을에 부임해 무자비하게 형을 집행해 희생된 이들의 피가 10여 리를 흘렀다고 한다. 그렇게 법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중, 봄이 되었다. 옛날에는 봄은 생기를 가져오는 계절이기에 일체의 살상을 금하였다. 따라서 그의 살인행각도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발을 구르며 탄식하였다. “아! 겨울을 한 달만 더 연장한다면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을!” 원하는 만큼 죽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한 것이다. 그의 심성을 이 한마디 독백으로 표현한 뒤, 사마천은 뒤이어 아무 멘트 없이 한 줄을 보태고 있다. ‘천자, 즉 무제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유능하다고 여겨 승진시켰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이른바 춘추필법의 진수라고 본다. 사마천은 이 한 줄을 통해 당시 최고의 혹리가 다름 아닌 ‘천자’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것을 찾는 재미로 ‘사기’를 늘 읽게 되는 것 같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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