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캐릭터 군단이 밀려온다. 할리우드가 끊임 없이 소재를 건져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 만화 출신의 영웅이 등장하는 ‘배트맨 비긴즈’(24일) ‘씬시티’(30일) ‘판타스틱4’(7월22일) 등이 잇따라 개봉된다.
너, 어디 출신이니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주로 ‘…맨’으로 불리는 캐릭터는 대부분 미국 만화 출판계를 양분하고 있는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 출신이다. 슈퍼맨 배트맨 플래시맨 등이 DC코믹스, 헐크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이 마블코믹스의 캐릭터다.
‘배트맨’은 1939년 DC코믹스를 통해 처음 등장했고, ‘씬시티’는 80년대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DC코믹스의 명작이다. ‘판타스틱4’는 61년부터 마블에 연재됐다.
캐릭터는 출신지별로 차이가 있다. DC코믹스의 주인공이 선천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악의 무리에 맞서는 전지전능한 영웅이라면 마블코믹스의 캐릭터는 평소 평범하게 살다가 우연히 능력을 얻게 된 후,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식이다.
DC코믹스의 캐릭터가 먼저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날렸고 마블의 캐릭터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엑스맨’(2000) 이후 사랑 받기 시작했다. 고뇌와 암울한 성격을 간직한 복합적인 성격에 관객들이 더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캐릭터 영화는 왜 이어지는가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만화 영웅을 내세운 영화는 여러모로 제작사의 구미를 당긴다. 무엇보다도 톱스타 캐스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마블코믹스의 대표가 “스파이더맨이나 헐크는 이미 톰 크루즈급의 스타”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만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스타다. 토비 맥과이어가 스파이더맨을 연기한다 해도 ‘스파이더맨2’의 주인공은 스파이더맨 그 자체이며 크리스찬 베일이 ‘배트맨’으로 등장하더라도 주인공은 배트맨일 뿐이다.
때문에 제작사로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톱스타의 출연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씬시티’만 해도 신인에 가까운 제시카 알바, 일라이저 우드 등과 한물 간 취급을 받는 브루스 윌리스에 문란한 사생활과 잇단 성형수술로 망가질 데로 망가졌던 미키 루크를 캐스팅 했지만, 결과는 흡족하다.
또 다른 장점은 속편 만들기가 수월하다는 것. 수익 극대화를 위해 속편 제작이 숙명인 제작사 입장에서는 확실한 팬을 거느린 만화 캐릭터가 더 반갑다.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 크리스천 베일 등으로 주인공을 바꾸더라도 영화 속 ‘배트맨’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만화 원작 영화의 진화
원작자 프랭크 밀러가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과 공동으로 연출한 ‘씬시티’는 원작만큼 충격적인, 한껏 진화한 스타일이다. 만화를 ‘하위문화’로 취급하는 시선을 비꼬는 듯, 싸구려 냄새 나는 감성을 마음껏 담았다.
게스트 감독으로 참여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감성과 일맥상통한다. 디지털 기술을 동원해 화면을 모두 흑백으로 처리한 채 사방으로 튀는 노란색 피, 새빨간 드레스 등 포인트 색만 강렬하게 담았다.
선과 악의 구분이 뒤섞이고 때로는 뒤집혀 버린 도시, 씬시티에 사는 이들의 어둠과 욕망은 흑백 화면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남성의 성기를 뽑아내고, 얼굴만 남겨 둔 채 사지를 절단하는 등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배트맨 비긴즈’는 만화 캐릭터 재활용에 한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이전으로 돌아가 주인공의 내면적 성찰에 초점을 맞춘다. 가장 늦게 개봉하는 ‘판타스틱 4’는 엑스맨과 헐크 등 돌연변이 캐릭터의 원조격이다. 우주에서 실험 비행하던 4명이 방사선을 쪼인 후 초능력을 얻은 후 숙적인 닥터 둠과 대결한다는 줄거리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 美만화의 두 계보
미국의 만화는 크게 코믹스와 그래픽 노블스로 나뉜다. ‘씬시티’는 그래픽 노블의 원작을 베끼듯이 스크린에 옮겼으며 ‘배트맨 비긴즈’는 코믹스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코믹스가 흑백이나 간단한 칼라 그림에 주로 초능력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그래픽 노블스는 고급종이에 칼라로 정교하면서도 힘있는 그림을 담은 화집에 가깝다.
내용면에서 코믹스가 대사와 이야기 전개에 집중하는 반면, 그래픽 노블스는 깊이 있는 이야기와 주제 의식을 다뤄 소설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굳이 비교하면 그래픽 노블스는 극화형식을 띤 우리나라의 단행본 만화와 유사하다. 미국 만화계의 거장 윌 아이즈너의 말을 빌리면 “코믹스는 멜로디고, 그래픽 노블은 심포니”다.
만화를 그대로 옮긴 듯한 ‘씬시티’와 온전한 실사영화인 ‘배트맨 비긴즈’가 제작방식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질감이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지는 것은 원작의 상이한 표현형태에서 비롯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배트맨’ 5편의 감독으로 거론되었던 ‘레퀴엠’의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배트맨: 영년’을 염두에 두고 연출을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