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안식처다. 세상이 아무리 손가락질 해도 모든 것을 감싸주고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엄마의 본능이다”라고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영화 ‘마더’는 엄마, 특히 나이든 엄마들에 대한, 차마 범할 수 없는 신화에 도전한다. 그들이 이미 자기의 아이까지 거느리게 된 자녀들에게 더 이상 양보할 수만은 없다고, 자기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면서 영화는 성긴 현대 가족들의 자화상과 노년의 우울한 뒷모습을 되돌아본다.
남편과 등을 지고 잘 정도로 성적 욕망과는 오래 전 결별한 것처럼 보이는 60대 후반의 여인 메이(앤 레이드)는 런던의 아들, 딸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새로 벌인 사업 때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아들 바비는 오랜만에 만난 부모가 안중에도 없다. 며느리도 불손하기 짝이 없다. 손자는 선물이나 바랄 뿐, 노부부의 애정표현이 도무지 마뜩지 않다. 그나마 살갑게 대하는 것은 이혼한 딸 폴라 정도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동안 아버지는 모두를 숙연케 하는 말 한 마디를 던진다. “나는 우리 가족이 자랑스럽다”고.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고마움인지, 바람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 말을 끝으로 그는 급사한다.
느슨하게 나마 가족들을 규제하고 통솔하던 가부장이 사라진 것이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부부라는 울타리 속에 억제되었던 메이의 욕망이 몸 밖으로 비집고 나오고 가족들은 서서히 핵분열을 일으킨다.
하지만 메이의 정염은 주체할 수 없는 젊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라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인생의 종착역을 혼자 가야만 한다는 두려움에서 잉태된 것이다. 여기에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양로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과 자녀와 손자는 더 야박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포개지면서 그녀는 딸의 연인을 사랑하게 되는 망측한 열정에 몸을 던진다.
자극적이며 비윤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 속 메이의 행동은 관객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주저 앉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녀가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돼. 아무한테 환영 받지 못하고”라며 바비 부부를 타박하는 대런(다니엘 크레이그)의 사려 깊은 말과 건강미에 달뜨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젊은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다.
애처롭고 우울하기 그지없는 메이의 민망한 행동이 예상치 못했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앤 레이드가 사석에서 “마치 신의 잔인한 장난 같아요. 귀도 안 들리고… 등도 휘고 했지만, 성적 욕망은 그대로 있는 거죠”라고 정의 내린 늙음이 결코 누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을 연출한 로저 미셸 감독이 인종문제와 동성애를 다룬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의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를 만나 기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 24일 개봉. 18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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