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다 빈치 코드’ ‘연금술사’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설득의 심리학’. 교보문고가 올해 상반기 전국 9개 영업점과 인터넷 교보문고 판매도서를 집계한 결과 가장 잘 팔린 책 10권 중 번역책이 절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전체 도서 중 번역서가 30%를 차지하니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대표적인 창작물로 꼽히는 소설과 어린이 그림책 베스트셀러가 거의 대부분 번역 도서에 점령당했다는 사실이다.
국내 작가들이 해외 도서전에서 이름난 상을 잇따라 받을 정도로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는 그림책 분야는 최근 4년 동안 매년 국내 베스트셀러의 70% 안팎을 외국책이 차지했다. 베스트셀러 중 외국소설 비중은 불과 몇 년 전까지 50%에도 못 미쳤으나 최근 1, 2년 사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22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판매 도서 중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20권 중 번역책이 13권이다.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1분’ 등에 이어 일본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공중그네’ ‘상실의 시대’와 영미권 소설 몇 권이 줄줄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 있다.
그 사이에 박완서, 김별아, 은희경, 공지영, 김진명, 김훈 등 국내 작가 몇몇의 이름이 보인다. 외국소설의 인기는 지난해 더 높았다. 잘 팔린 책 20권 중 무려 16권이 번역물이다.
해외 유명작가의 수준 높고 이름 있는 소설을 찾아 읽는 건 당연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2001년 같은 집계에서 외국소설은 20권 중 7권에 불과했다. 그 전 해에도 9권 수준이었다. 당시 잘 팔린 작가 대열에는 황석영 최인호 박완서 윤대녕 신경숙 양귀자 안도현을 비롯해 조창인 김하인 김진명 김정현 등이 들어 있었다.
댄 브라운 열기처럼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작가가 국내 소설 시장을 주도하는 단기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국내 작가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출판인은 “시대 흐름이 바뀌었으니 과거 인기 작가들의 유명세가 계속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작가들에 대한 독자 반응이 그 전 세대 작가들 만큼 뜨겁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며 “1990년대처럼 주요 작가들에 독자들이 열광하고 따라서 작품 생산도 활발하던 시기가 이제 다시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출판계가 국내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데도 상황은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림책은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20권 중 해외 도서가 16권이다. 교보문고가 자료를 갖고 있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도 평균 13권 수준으로 번역물 비중이 계속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림책 분야는 ‘사과가 쿵’(다다 히로시)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로버트 먼치) ‘달님 안녕’(하야시 아키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등 스테디셀러가 베스트셀러라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강아지 똥’을 제외하면 수준이 높아졌다는 국내 그림책은 스테디셀러라는 성을 쌓지도, 그 성을 깨뜨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창비 김이구 이사는 “이제는 웬만큼 수준 높은 그림책은 거의 번역 출판되어 곧 번역물 시장이 한계에 부닥칠 것으로 본다”며 “출판인들이 한국적이면서 보편성을 담은 창작 그림책을 내는데 좀더 열정을 쏟아 저작권 수출의 돌파구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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