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모순(矛盾)>
참으로 신기하다. 자연에는 우리가 천적관계라 부르는 질서가 존재한다. 피조물 스스로 영원을 탐내고 자존광대(自尊廣大)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신의 섭리인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는 창(矛)과 어떠한 창으로도 뚫을 수 없다는 방패(盾)가 있단다. 이런 창이나 방패를 각각 하나씩 가진 사람끼리 대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싸워봐야 안다. 부딪쳐봐야 결판이 난다. 어쩌면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에게 큰 소리로 겁만 주고 그만둘지 모른다. 무기체계 중에는 이처럼 신기한 것들이 많다.
2000년 3월 27일, 미 하원의원 16명이 연명으로 법안을 제출했다. 법안 제안목적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러시아가 중국에 대함미사일의 공급을 중단할 때까지 미국이 러시아에게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지불을 유예하는 조치를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이 미사일은 항공모함과 이지스(Aegis) 무기체계를 장착한 함정들을 파괴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이라고 제안서는 밝히고 있다.
<뚫리는 신의 방패>뚫리는>
몇 회의 연재를 통해 이지스 무기체계와 미사일방어체제를 다뤘다. 어떠한 무기체계로도 뚫을 수 없는 방어체제를 보유한 미국과 일본은 어떠한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할 것이라 믿는다.
그 환상을 깨뜨리는 대표적인 무기체계가 있다. 나토(NATO)에서 SS-N-22 썬번(Sunburn)이라고 부르는 러시아의 대함미사일 모스키트(3M-82 Moskvit)가 그것이다. 이 미사일은 수면 위 5 ~ 10m의 높이로 날아간다. 음속 2.5 ~ 3배의 속력으로 날아가 목표물 부근에 이르면 갑자기 공중으로 상승한 후 수직으로 하강하며 목표물을 타격한다. 미국 두뇌집단 중 하나인 ‘제임스 타운 재단’의 평가서는 썬번이 공중에서 강하하며 목표물을 타격하는 속도가 무려 음속의 4.5배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어떠한 방어체계로도 방어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사정거리도 해상이나 지상 발사의 경우 120-150km, 전투기에서 공중 발사하면 250-300km나 된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함정을 격침시켜 유명해진 프랑스제 엑소세(Exocet)나 미국이 자랑하는 하푼(Harpoon)은 그 속력이 음속 이하이다. 이론적으로 이 미사일들에 대해서는 120-150초 정도의 방어가능시간이 있다. 썬번 미사일은 방어가능시간이 25-30초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지스함에 장착된 기존의 근접방어무기체계로 대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1987년, 걸프만에서 미 전함 스타크호는 이라크 전투기에서 발사된 엑소세 미사일 2발을 맞고 거의 두 동강이 났으며 37명의 장병이 사망했다(사진).
썬번 미사일은 300kg의 준(準) 장갑관통탄두 또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 위력의 6배에 달하는 20만톤(200kT)급 핵탄두를 장착한다. 300kg의 탄두가 음속의 2.5~3배 속도로 목표물을 타격하면 핵탄두가 아니라도 구축함 등은 단 한발에, 항공모함도 여러 발 피격되면 격침될 수 있다. 이 미사일이 천문학적 숫자의 투자비를 들인 이지스함이나 항공모함을 무력화하거나 격침시킬 수 있으니 군사무기체계에서 얘기하는 천적 즉 비대칭무기(非對稱武器)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썬번 미사일의 확산>썬번>
2000년 2월,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8,480톤급 소브레메니 구축함 2척을 인도받았다. 이 구축함 한 척당 8개씩 장착할 썬번미사일도 공급받았음은 물론이다. 냉전 시대에는 소련이 바르샤바 동맹국들에게도 공급하지 않던 극비의 무기체계였으나 이제는 국제무기시장에 내놓고 판매한다. 최신 썬번 미사일은 항공모함과 그 주변의 호위함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향상됐다. 게다가 러시아가 새로 개발한 P-800 야콘트 대함미사일(SS-NX-26)은 음속의 2-2.5배, 사정거리가 300km나 되며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한 미사일이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썬번미사일 841기 전량을 구매하려고 다각적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제 미국이 염려하는 것은, 뛰어난 역설계 능력으로 중국이 이 미사일을 대량 생산하여 다른 나라들에게 수출하는 것이다. 썬번 미사일을 통해 러시아 미사일의 램제트(Ramjet) 추진기술을 손에 넣은 중국은 다른 전략순항미사일 개발에 이 기술을 적용할 것이다. 그 파급효과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은 독일과 협력하여 1990년대 중반부터 RAM(Rolling Airframe Missile)을 개발했다. 그리고 자국의 이지스함에 장착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이를 도입하여 장착한다. 음속 2.5배의 속도로 접근하는 대함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개발한 RAM은 기존의 사이드와인더 및 스팅어 미사일 기술을 응용하여 개발했다.
지난 6월13~19일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에어쇼’에서 필자가 만난 독일의 RAM 개발 담당자는 큰소리치며 장담했지만 실제로 썬번과 대결하여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에 비해 미국의 고속크루즈미사일 설계茱珦?10년은 뒤진다는 군사전문가들의 평가를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악의 축과 썬번>악의>
미국은 이미 2002년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 북한 중국 등에 대하여 예방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 후 2차 이라크 전쟁에서 가공할만한 군사력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미국의 경고와 위협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 신비한 내막은 무엇일까? 오히려, 만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한다면 걸프만은 피의 바다가 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어떤 새로운 군사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썬번미사일로 인해 중국이나 이란이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에 대항할 수 있는 비대칭수단을 가지게 된 것 같다.
2001년10월, 러시아를 방문한 알리 샴카니 이란 국방장관이 썬번미사일 시험 발사를 참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6발의 미사일을 우선 주문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 이후 숫자 미상의 미사일이 이란에 공급되었다는 보도가 뒤 따르고 심지어는 사정거리 300km의 신형 야콘트(SS-NX-26) 미사일까지 공급됐다는 자료도 있다. 또한 이란은 프랑스제 엑소세 미사일도 400여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것이 사실이고 미국과 이란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사태는 심상치 않다. 호르무즈(Hormuz)해협은 이란의 대함미사일로 즉시 봉쇄되고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전 세계는 재앙적 공황을 맞게 된다. 이미 걸프만 안에 진입한 미 해군함정들은 고스란히 이란의 대함 미사일의 목표물이 된다. 불길에 휩싸여 침몰하는 미 해군함정들의 모습이 CNN 뉴스를 타고 전세계에 비춰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미국의 대응이 쉽지 않다. 걸프만 북부 해안은 산악지대이다.
이란이 동굴, 터널 등에 배치했을 미사일 발사대들은 쉽게 파괴할 수 없다. 인도양에 결집한 미 해군 함정들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걸프만 안으로 진입할 수 없고, 이라크 주둔 미군 또한 해상 보급로의 봉쇄로 인해 극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힘 겹게 수행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마저도 무기와 탄약, 기타 보급품의 공급차질로 인해 반군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설득력 있다.
<패권경쟁과 예방전쟁>패권경쟁과>
경제 발전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지금은 미국과 패권을 다투며 경쟁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지금의 속도로 경제 성장을 지속하고 사회체제를 관리하면서 현재 수준의 군비투자를 계속한다면 2025년이면 미국을 뛰어 넘은 최강의 군사, 경제 대국이 될 것이다.
국제정치학의 패권(覇權)이론과 세력전이론(勢力轉移論)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력, 군사력이 미국을 추월하게 될 2025년 이전에, 가능한 한 중국의 군사력이 더 커지기 전에,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예방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동 아시아에 민주화가 진전되고 상호 경제적 의존이 확대되며 경쟁과 갈등을 조정할 국제기구들이 형성되면 이 지역에 평화가 이루어지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주의 이론가들은 세계적 패권국가 미국과 이를 위협할 중국의 등장이 필연적으로 미국에 의해 동아시아 패권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진단한다.
미국의 예방전쟁을 예방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썬번 대함 미사일’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에게 괴멸적인 핵전쟁은 서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런 비대칭무기들이 갖는 억지력은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다. 중국은 때가 되기까지 시간을 벌고 있다. 동아시아에 펼쳐질 대결은 필연적인 세계사적 대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북한 핵 문제와 양안문제(중국과 대만)가 이런 패권 예방전쟁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 회에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윤석철 객원 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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