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최전방 초소 내무반에서 육군 병사가 총을 난사, 장병 8명이 숨진 것은 군 총기사건으로는 몇 십년 사이 가장 큰 참극이다. 희생된 병사 모두가 스물 하나 또는 스물 둘,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다.
팽팽한 젊음을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24시간 교대로 지키는 긴장되면서도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에 바친 채 제대 날짜를 손꼽았을 그들이기에 허망한 죽음이 더욱 애절하다.
-군 기강보다 근본 원인 고민해야
다급한 군은 범행한 병사가 선임 사병들의 괴롭힘에 반감을 갖고 일을 저질렀다고 설명한다. 또 사회는 휴전선 다른 곳에서 북한군 병사에게 3중 철책이 맥없이 뚫린 것을 함께 주목, 무너진 군 기강과 안보 허점을 개탄한다.
아직 미숙한 젊은이들에게 국방의무를 앞세워 총과 수류탄을 들고 철책선을 지키도록 한 어른들이 범행한 병사와 희생된 병사, 지금도 철책선 앞에 선 병사 모두를 나무라는 듯하다. 이 평화 시대에 젊은 병사들이 덧없이 스러진 비극 앞에서 군 기강과 안보태세를 논하는 것조차 야속하게 들린다.
30년 전 초급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은 안보상황이 훨씬 각박했다. 그러나 그 때도 지휘관들이 내심 가장 고민한 것은 적과 싸워 이기는 필승의 전투태세 확립보다 언제 어디서 탈날지 모르는 병사들을 감독하는 일이었다.
혹독할 정도의 훈육과 군기를 앞세웠지만, 혈기왕성하고 이성문제를 비롯한 삶의 고민 또한 치열한 어린 병사들을 사회와 격리된 틀에 가둔 근본적 딜레마는 때로 장교들까지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세월이 흘러 군도 변했으나 사회가 발전한 것에 비하면 생활여건 등의 괴리는 오히려 훨씬 커졌다. 남북대치 양상과 병사들의 의식이 변한 것까지 고려하면, 군의 딜레마는 가늠할 수 없을 만치 깊어졌다고 본다. 군기 사고의 근원도 여기에 있고, 대책을 떠드는 사회가 먼저 깨달아야 할 것도 그 딜레마의 심각성이다.
이를 외면한 채 군의 비민주성과 폭력문화 청산을 외치는 것은 피상적 진단이고 처방이다. 세상이 달라진 데 따른 병사들의 변화를 신세대의 나약함으로 규정하는 것도 안이하고 무책임하다.
사회와 군의 괴리가 커지는 것을 방치한 잘못부터 반성하고, 이제라도 격차를 좁히는 길을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 당장 병사들의 생활여건과 대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과학적 인성관리 등을 위한 지원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
그럴 돈이 어디 있느냐고 되묻는 것은 언뜻 합리적이지만 염치없다. 안보의 중요성을 떠들면서 젊은 병사들이 견딜 수 없어 하는 희생에 마냥 기대려는 의식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변함없는 안보태세를 외치는 보수상류 계층일수록 제 자식은 군에 보내지 않는 위선을 깨야 한다. 미국 등 여러 나라가 모병제를 택하고 웬만한 중산층 보다 나은 처우에 학자금 지원과 연금혜택까지 베푸는 연유를 헤아려야 한다.
-남북 대치의 아이러니 깨달아야
아직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논리에 매달려서는 군기사고 예방은 물론, 안보태세 유지도 갈수록 어려울 것이다. 반세기 넘게 전쟁 없는 상황에서 70만 대군을 계속 이대로 처우하며 탈없이 유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민해야 한다.
그게 무기 현대화니 장성인사 개혁이니 하는 거창한 논란보다 훨씬 절실한 과제다. 모병제나 대규모 감군을 논의하기는 이르지만, 안보상황과 젊은 병사들의 의식변화 등 세상이 달라진 것만이라도 제대로 봐야 한다.
참변을 당한 병사들과 같은 또래 북한군 병사가 배고픔에 시달리다 목숨을 걸고 철책선을 넘어와 아마도 동경했을 초코 파이와 라면을 훔쳐 연명한 사실은 상징적이다.
남북이 모두 스스로 처한 상황을 외면한 채 휴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강파른 대치를 계속하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 북한군 병사가 키 150cm에 몸무게 45kg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북한 만의 비극으로 여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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