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라는(切実な望みが一つ吾れにあり諍いのなき国と国なれ).’
20일 한ㆍ일 정상회담 직후 두 정상이 보도진에게 설명하는 내용을 TV로 지켜보던 이승신(54ㆍ갤러리 더 소호 대표)씨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어머니(손호연)의 시를 인용하는 것을 보고 남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21일 화랑에서 만난 이씨는 “와카(和歌)를 통해 평생을 사랑과 평화, 특히 한ㆍ일 양국의 평화를 노래해 온 어머니의 노력이 이제서야 작은 결실을 맺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손씨의 시를 인용한 뒤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해 온 손 시인의 시를 최근에 접하게 됐다”며 “다툼 없는 나라가 되기 바라는 시심은 시인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국민의 희망이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와카(和歌)는 31자로 된 5ㆍ7조의 짧은 시로 일본의 국시(國詩)로 일컬어진다. 17자(5ㆍ7ㆍ5) 정형시 하이쿠(俳句)의 모태가 바로 와카다.
고이즈미 총리가 세 번이나 언급한 손호연(1927~2003)은 유일한 한국인 와카 시인이었다. 그는 일제 때 일본 사가미 여자대학에 유학하던 중 유명한 고(古)문학가였던 사사키 노부쓰나를 통해 와카에 입문했다. 유학 시절을 제외하곤 평생을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오래된 한옥에 살면서 시를 썼는데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60여 년 동안 2,000여 편의 와카를 지었고 일본의 유명 출판사 고단샤에서 시집을 6권이나 냈다. 와카의 최고 권위자 나카니시 스스무 교토예술대 총장으로부터 “일본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한국인의 감정을 담아낸 국경을 초월한 노래”라는 격찬을 받는 등 ‘명인(名人)’ 칭호를 얻었다. 98년에는 와카의 대가로 천황의 초청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엔 한ㆍ일 문화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이듬해엔 같은 공로로 일본 정부 표창을 받았다. 일본에는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 등 네 곳에 그를 기리는 시비까지 세워져 있다.
손 시인은 형식은 와카를 빌렸지만 내용은 한복이나 장독대 등을 소재로 한국의 전통 문화와 두 나라가 다툼 없이 지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았다. 맏딸인 이씨는 “어머니는‘한국 사람이 왜 일본 시를 짓느냐?’는 질타도 많이 받으셨어요. 하지만 와카의 뿌리가 우리의 향가라고 굳게 믿고 오히려 더 자부심을 갖고 진력하셨지요”라고 말했다.
다섯 권의 시집에 ‘무궁화 1~5’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 이윤모(전 변리사협회장) 변호사의 아내이자 1남 4녀의 어머니로서 해방ㆍ분단ㆍ전쟁의 아픔을 시로 승화시킨 손씨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희로애락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과거 앙금을 조금이나마 삭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어머니 이름을 딴 문학상 제정 등 각종 손호연추모사업(홈페이지 www.sonhoyun.com)을 준비 중이다. 3년 전 역자로 참여해 첫 한국어 번역본‘호연연가(好姸戀歌)-찔레꽃 뾰족한 가시 위에 내리는 눈은 찔리지 않으려고 사뿐히 내리네’(샘터 발행)를 펴낸 데 이어 최근엔 시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을 끝냈다.
이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20여 년간 방송기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귀국 후 제일기획 고문 등을 지내고 현재는 필운동 옛 한옥 터에 지은 복합예술공간‘더 소호’의 대표이자 손호연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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