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워싱턴에 있었던 한ㆍ미 정상회담에서는 귀에 익은 미국 측 통역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 통역관이 등장한 것이다.
1978년 이래 미 국무부 한국어 통역관으로 한국 현대사의 외교 무대를 목격해 온 김동현(69)씨의 은퇴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달 말 국무부를 떠나는 김씨는 20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서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르는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제네바 핵 협상과 6자 회담 등 한ㆍ미와 북ㆍ미 간 주요 외교사의 뒷얘기를 풀어놓았다.
17번의 평양 방문. 미측 ‘대표는 바뀌어도 통역은 그대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줄곧 북ㆍ미 간 대화의 통로 역할을 해 왔다. 2000년 10월 12시간에 걸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회담이 통역 인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2001년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디스 맨(this manㆍ이 사람)’이라고 한 것은 김 대통령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당시 이 말을 ‘this great man(이 대단한 사람)’으로 해석, ‘대통령께서’라고 통역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참모가 써 준 자료를 보지 않고 말하는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꼽은 김씨는 “한국 대통령들이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이미 다 아는 내용을 반복하기보다는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으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6자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부시 정부 기간에 완전히 해결되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 이유로 미국과 북한 모두의 경직된 사고 방식을 꼽았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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