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튼 전 미 국무부 군축안보 담당 차관의 유엔 행이 또 다시 무산됐다. 그의 유엔 대사 지명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오만으로 보는 민주당이 인준 표결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이날 상원에서 지난 달 26일에 이어 볼튼 지명안에 대한 표결을 강행하려 했다. 토론을 빌미로 한 민주당의 지연 작전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치러진 상원 선거 결과는 공화당의 일방적 독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인준 표결을 위한 표결 격인 이날의 기싸움에서 토론 종결에 찬성한 의원은 54명. 3명의 민주당 반란표가 있었지만 민주당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저지하기 위한 정족수 60명에는 6명이 모자랐다.
이에 따라 백악관은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이 상원 휴회 중 발생하는 공석을 임시로 채울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볼튼은 상원인준 없이도 109차 회기가 끝나는 2007년 1월까지 임시 대사로 일할 수 있다.
의회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이 다음달 2일 ‘휴회 중 임명’카드를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첫 임기 때 연방 법관 지명에 이 카드를 빼든 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엔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대통령의 지명권을 의회가 승인하는 ‘견제와 균형’은 미 건국 초기부터 정착해온 미국 정치의 전통이다. 대통령이 의회를 우회 통과하는 강수를 자주 사용할 경우 당파적 권한 오용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볼튼 지지자인 팻 로버츠(공화) 의원 조차 “휴회 중 임명은 볼튼뿐 아니라 미국을 약하게 할 것”이라며 “국제 사회가 새 대사를 초당적 지지를 받지 못한 인물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분은 있다. 부시 대통령은 “상원이 유엔을 개혁하는 데 흥미가 있다면 이제는 인준 투표를 해야 할 때”라고 압박했다. 리처드 루가(공화) 외교 위원장은 “우리는 유엔에 파견할 대사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외교위의 민주당 간사인 조지프 바이든 의원은 행정부가 볼튼의 적격 여부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내놓아야 인준 표결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20일 볼튼 지명자가 국무부를 떠난 후 북미간 뉴욕 채널이 재가동되는 등 그의 이임으로 국무부의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런 변화가 볼튼 지지자에게는 이너 서클의 정책 결정자를 옹호할 사람이 부시 정부에서 사라지면서 몇 가지 원칙적인 입장이 약해지는 우려할만한 징후로 보이겠지만, 많은 군축 옹호론자는 볼튼의 이임을 미국이 국제 관계에 더 실질적으로 접근할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