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옛 서대문형무소) 앞. 다른 납북인사 가족들과 함께 납북길 따라 걷기 행사에 참여한 이태용(64)씨는 55년 전 일이 생각나는 듯 진저리를 쳤다.
이씨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1950년 7월 초순. 한국전쟁이 발발 한 지 열흘 만에 인민군은 서울로 입성해 곧바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색출, 당시 서대문형무소와 마포형무소에 감금했다가 강제입북시켰다.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 기자를 그만두게 된 이씨의 아버지 이길영(당시 51)씨도 집 앞에서 인민군에 의해 끌려 간 뒤 납북됐다. 아버지는 계속 행방불명자로 분류돼있다가 2002년에야 정부문서를 통해 납북사실이 확인됐다. 이씨는 아버지의 생사확인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허사였다. 현재 8만여명의 납북인사 가족들은 아직도 이씨처럼 부모형제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주최로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열린 이날 행사는 소속 회원들이 납북된 부모형제들이 끌려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당시 고통을 체험하는 행사. 회원 200여명은 서대문 독립공원을 출발해 대학로∼미아리고개∼강북구청∼우이동 솔밭길까지 이어지는 16㎞ 구간을 인도를 따라 걸었고 점심 때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주먹밥 2개로 끼니를 해결했다.
당시 서북청년단 소속으로 활동하다 평양까지 끌려가 2개월 반 만에 탈출한 김용일(82)씨는 “납북인사 대부분이 끌려가면서 하루에 볶은 보리 한줌씩 밖에 먹지 못했다”며 “굶주림은 참을 수 있었지만 가족들과 영영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버지가 납북된 유재건(69) 열린우리당 의원은 “서울역에서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천안으로 가족들을 피란 보냈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들은 이날 오후 우이동에서 차를 타고 한탄강으로 이동해 납북길 다큐멘터리 상영과 납북사연 나누기, 그 때 그 노래 부르기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가졌다. 또 22일에는 노동당사와 민통선 내 월정리를 방문해 망배행사를 갖고 기념식수 및 헌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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