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한국시각) 미국 노스캐롤라니아주 파인허스트리조트 2번 코스(파70ㆍ7,214야드) 18번홀(파4). 세 번째 샷을 핀 옆에 붙인 뒤 그린쪽으로 걸어오던 마이클 캠벨(뉴질랜드)은 두 팔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을 US오픈의 새로운 정복자로 점지해 준 신에게 감사를 보낸 것일까. 단 한 명에게도 언더파를 허용하지 않은 악명 높은 파인허스트 코스는 퇴물 취급을 받던 36살의 마오리 전사에게 105번째 영광의 문을 열었다.
‘키하 카하(Kia Kaha).’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강해지자’는 뜻으로 외치는 구호와 전통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캠벨은 이날 1타를 줄이면서 합계 이븐파 280타로 타이거 우즈(미국)의 막판 추격을 2타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마지막 홀에서 볼을 꺼내든 뒤 모자를 눌러쓰고 눈물을 쏟아낸 캠벨.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자신의 소감처럼 이변의 드라마였다.
1995년 데뷔 이후 유럽 무대에서만 통산 6번 우승. 하지만 각종 부상과 체력 문제로 2003년 이후 무관에 올해에는 5번이나 예선 탈락할 만큼 잊혀져 가던 인물이었다. 특히 미국 무대에서는 한번도 우승 경험이 없는 캠벨은 US오픈에서만 4년 연속 컷 탈락의 고배를 마실 만큼 이 대회와는 악연의 골이 깊었다. 게다가 캠벨은 미국골프협회(USGA)가 처음으로 유럽지역에서 퀄리파잉 대회를 열지 않았다면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했을 처지였다.
‘US오픈 사냥꾼’인 레티프 구센(남아공)에 4타차 뒤진 채 출발한 이날 경기 상황도 극적이었다. 구센(11오버파 81타)을 비롯해 공동 2위 그룹을 달리던 제이슨 고어(14오버파)와 올린 브라운(10오버파ㆍ이상 미국)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8’자를 그리면서 캠벨에게 ‘밥상’을 차려 주었다.
문제는 우즈. 막판 캠벨에 2타차까지 추격한 우즈는 그러나 16번홀(파4)에 이어 17번홀(파3)에서 잇따라 보기를 범하면서 10번째 메이저 우승의 꿈을 접었다.
“골프인생에 오르막과 내리막을 너무 많이 경험했다”는 캠벨에게는 117만 달러의 거금과 5년간 PGA투어 전경기 출전권 만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우즈의 캐디 스티븐 윌리엄스와 포옹을 나눈 그는 고국에 1963년 봅 찰스(브리티시오픈) 이후 42년 만에 2번째 메이저 트로피를 안겨준 스포츠영웅으로 탄생했다. 한편 최경주(나이키골프)는 공동 15위(9오버파)로 US오픈 최고 성적을 냈다.
김병주 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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