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시가 15억원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포함해 집 5채, 안양ㆍ화성 등 수도권에 2만여평의 임야를 소유하고 있는 재산가 A(43)씨. 올들어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소득세 중과 등 소나기식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이 나왔지만 단 한 건의 부동산도 팔지 않았다.
오히려 한남동 등 서울 강북 뉴타운 예정지의 집값이 오를 것 같아 이 곳 맨션과 빌라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 A씨는 ‘땅과 집은 묻어 두면 오른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실제 땅과 집을 사고 팔아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03년 ‘5ㆍ23대책’에서 지난달 ‘5ㆍ4대책’에 이르기까지 참여정부가 지난 2년여간 쏟아낸 주택 및 토지 관련 규제대책은 강도와 양적인 면에서 역대 정권 중 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남권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의 집값 오름세는 ‘망국적’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 정부의 단기 처방식 대응이 오히려 시장의 내성만 키워, 소위 ‘부동산 블루칩’ 물건은 웬만한 정부 규제에 미동도 안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수 읽기 싸움에서 오래 전부터 정부를 압도하고 있다. 결국 애매한 서민들만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요즘처럼 향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기 쉬운 적도 별로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미증유의 저금리로 막대한 부동 자금이 시중에 떠돌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 추진, 경기 활성화에 목을 맨 정치권의 부추김, 고급 주택에 대한 높아지는 선호도 등 부동산 시장에 호재가 될 만한 요소가 즐비하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주택 수요 차단에만 골몰한 정부의 근시안적 대책까지 곁들여져, 비전문가가 봐도 어디가 오를 지 훤히 보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새로 짜여질 부동산 정책은 대증 요법이 아닌,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집행 의지가 중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간 주택ㆍ건설 분야는 정치 상황에 따라 ‘가격 안정’과 ‘경기 부양’이라는 상반된 논리에 의해 왔다 갔다 했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도 국민들 사이에서 ‘일단 소나기만 피해 버티면 가격은 오른다’는 믿음이 생긴 것은 정부의 온탕 냉탕식 정책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절대 부동산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을 통한 재산 부풀리기가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가주택이나 토지 보유자에 대해서는 높은 보유세를 부과하고, 과도한 양도차익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대형 아파트와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양질의 주택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주택이 ‘투기’가 아니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값 안정 대책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집 값은 입지 이외에 학군, 편의시설, 교통 등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 문제의 발원지인 강남 집값이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오르는 것은 지난 20여년간 주거ㆍ교육ㆍ업무 등의 인프라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남 집값을 ‘때려 잡기’보다는 강북권 등 기타 소외지역의 기본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강남권으로 이전한 명문 고교나 주요 상업시설을 신규 택지지구 등으로 옮기는 안도 검토할 만 한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역대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산업화 과정에서 ‘부동산은 언젠가는 오른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았다”며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통해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웅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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