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는 듯한 작은 흠집, 또는 용암처럼 뵈는 흔적들에 입혀진 강렬한 색깔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는 2m, 3m 높이의 대작들이 60여점 걸려있다. 빨강, 초록, 노랑,파랑의 원색들이 울퉁불퉁 다양한 표정이다. 만져 보고싶은 충동이 든다.
톱밥과 커피가루 등을 두툼하게 묻혀 재질감을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해온 홍정희(60)씨가 3년만에 ‘나노(nano)’ 시리즈를 들고 나왔다.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정도. 몇 년전 그는 ‘영국 과학자들에 의해 특이한 실리콘 탄화칼슘 나노 구조들이 만들어졌고 특정온도와 압력 조건들에서 나노꽃도 형성됐다’는 신문기사를 읽다가 흥미로워 작품 소재로까지 쓰게 됐다고 한다.
“톱밥으로 만든 나만의 ‘나노꽃’이지요. 사진을 보니 우리가 흔히보는 꽃들과 다를 바 없더라고요. 제가 만든 나노꽃은 네잎클로버 같기도 하죠? 전에는 풍부한 색채와 드라마틱한 공간구성을 했다면 지금은 지워지고 단순화 됐어요. 색은 여전히 강렬하고요.”
주로 대작을 하던 그는 이번엔 31cm 높이의 소품도 몇 개 만들었다. 그곳에도 역시 그만의 나노꽃이 큼지막하게 그려져있다. “큰 작품은 작업할 때 엄숙한 느낌이 많이 드는 데 작은 작품은 같이 이야기 하는 느낌이더라고요. 점점 나이가 들면 큰 작업이 힘들어질 텐데 실험적으로 해본 소품에 매력을 느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30년 전 우연히 목공소 앞을 지나가다 수북이 쌓여있는 톱밥을 보고 가져다 작업을 했다. 조개 가루, 커피 찌꺼기, 굳은 물감 등 다양한 재료들을 써봤지만 색을 쏙 빨아들이는 톱밥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작품은 할 때는 내 것이지만 완성되면 보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턴 관객이 느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나노 시리즈도 내 손을 떠난 이상 보는 관객에 따라 더 이상 나노 그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26일까지. (02)734-6111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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