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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아찔했던 나의 6ㆍ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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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아찔했던 나의 6ㆍ25

입력
2005.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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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로 뛰어오른 인민군을 향해 아버지는 호통을 치셨다. “신발 신고 어디를!”. 인민군이 아버지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쏘아 죽여 버린다!” 하얗게 질린 아버지 얼굴. 어머니가 총구를 옆으로 밀어내며 그를 달랜다. “괜찮습니다요, 괜찮아.” 인민군이 한참 후퇴 중이었다. 신발 신고 마루로 뛰어오른 인민군을 나무란 아버지 때문에 생긴 위급 상황이었다.

그는 안방을 통해 뒤쪽 울타리를 뛰어넘어 빠르게 도망쳤다. 순간 우리들은 가슴이 또 한번 섬뜩했다. 인민군에 끌려갔던 막내 외삼촌이 도망쳐 나와 우리집에 숨어 있었다. 숨어있던 천장 다락에서 잠시 나왔다가 열려 있는 안방 문 뒤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문 뒤에 있었기에 그는 외삼촌을 보지 못하고 달아나 버렸다.

아찔한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죽을 고비를 넘긴 상황이 또 있었다. 우리집은 대전 문화동에 있었다. 6ㆍ25 발발 후 미군이 계속 우리집 앞을 지나 대덕군 쪽에 있는 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인민군이 우리 집을 수색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동생이 6ㆍ25 발발 당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피난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아버지는 몇 번이나 다짐하셨다고 후에 말씀하셨다.

집이 동네 어귀에 있어서, 지나가던 피난민이 무거운 짐을 맡겨놓았다. 처마 밑에 숨겨놓거나 마당을 파서 묻어놓았다. 어느날 인민군이 수색을 나왔다.

경찰관 사촌 형이 맡겨 놓은 짐 속에서 권총이 나왔다. 인민군 장교 앞에서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하던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나섰다. 모르는 사람들이 맡기고 간 것이라는 침착한 설명과 호소가 아버지를 구했다.

어린 다섯 남매들은 아버지가 덮어준 솜이불을 살그머니 들어올리고 빈지문 사이로 전쟁 실황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길에는 먼지가 풀썩풀썩 났다. 어린 우리는 영화를 보듯 신나게 전쟁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아찔하고 섬뜩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55년 전의 6ㆍ25를 상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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