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개인적인 용무로 구청에 갔었는데 게시판에 홍보용으로 붙인 몇 장의 전시용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 주택에서 담장을 허물고 새로 단장한 모습인데 서울 등 대도시 근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원주택만큼이나 산뜻한 모습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처럼 우리도 담장 대신 잔디를 심고 나무로 울타리를 만든다면 도시가 지금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정겨운 모습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도 이미 담장을 허물고 대학 근처 주민들에게 개방하였는데 반응이 매우 좋다. 야간에 생길지도 모를 학생들의 안전 등 개방 이전에 우려했던 문제점들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경계의 해체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의미는 실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닫혀 있던 이웃들 간의 의사소통체계를 활짝 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웃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도 훨씬 유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담장 하나 허문다고 이런 변화가 오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잃어버린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공동테 복원운동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컴퓨터를 켜고 사이버 세상에 들어가면 무궁무진한 정보가 있다는 정도만 알았고, 이메일을 보내고 받는 수준이었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후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인터넷은 뿔뿔이 흩어져 살던 사람들을 동창회로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으며, 각양각색의 관심과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묶어 주는 공동체 기능도 해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일 월드컵, 지난 번의 대통령 선거, 촛불시위 등 기존의 사회체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국가적 행사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민들은 마음을 열고 주체가 됨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공동체를 복원시킨 것이다.
물론 인터넷은 여전히 아직은 굳지 않은 시멘트 같은 존재이다. 사람들이 지나 다닌 흔적이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그 발자국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도 받았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소위 공인들 여러 명이 회복할 수 없는 명예훼손을 당했으며, 왜곡된 정보들로 인해 사이버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젠 이러한 행위가 확산되어 감에 따라 유명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도 전이되어 버렸다. 이러한 인터넷의 권력화로 인해 이제 우리 모두가 보이지 않는 감시의 대상이 되어 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중이 이용하는 지하철 안에서 자신이 키우는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하차한 여성의 비도덕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안티(반대) 사이트가 생길 정도로 파렴치범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책임하게 공개하는 포털 사이트, 선정성 깊은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 광분한 네티즌 등이 합작하여 사이버 인민재판을 벌임으로써 한 개인의 인생을 망쳐 놓은 것이다. 이를 놓고 일부 언론은 인터넷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버 담장 발상 안될 말
그러나 인터넷은 그동안 무너져버린 대학의 담장처럼 금기시되었던 사회 영역을 해체하고 살 맛 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기능도 훌륭히 수행해 왔다.
아무리 댓글이 욕설이 난무하는 공간이라고 해도, 그 안에는 잘못된 내용을 교정해 주고 사회의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는 댓글에 또 다시 댓글이 덧씌워지면서 사회적 안건의 보편적 정체성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좀더 인내하고 사이버에 담장을 쳐야 한다는 발상은 발상으로 머물러야 한다.
자칫 어렵게 만들어낸 공동체가 또 다시 규제라는 담장에 갇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동규 중앙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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