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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익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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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익면성'

입력
2005.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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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아몽 콤플렉스’는 동물적 공격성과 폭력성, 파괴 본능을 가리킨다. 우루과이 출신의 이지도로 뒤카스가 ‘로트레아몽 백작’이란 필명으로 쓴 장편 산문시 ‘말도로르의 노래’는 ‘찢고, 물어뜯고, 집어삼키는’ 혼돈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이 시에서 가스통 바슐라르는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에 대한 인간의 꿈과 역동적 상상력을 읽었다.

문학이 아닌 현실에서도 인간의 공격성에 소스라치게 된다. 전쟁의 살육을 떠올릴 것까지도 없다. 술자리의 싸움, 난폭운전, 심지어 TV토론에서조차 로트레아몽 콤플렉스를 본다.

■미국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도 교수가 1971년에 주도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인간의 폭력 지향성을 확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범죄나 마약, 정신병력이 없는 평범한 24명의 참가자에게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부여하고 감옥 상황을 그대로 옮긴 실험실에서 지내게 했다.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금세 ‘나쁜 교도관’의 강압ㆍ폭력적 행태를 답습하고 심리전술까지 활용했다. 반면 ‘죄수’들은 극심한 혼란과 불안에 휩싸였다. 양쪽 다 정도가 너무 심해서 2주 예정의 실험은 6일만에 중단됐다.

■실험에는 몇 가지 ‘심리적 장치’가 사용됐다. 죄수는 알몸 소독을 받은 후 똑 같은 죄수복을 입고 수감됐다.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수인 번호뿐이었다. 교도관도 유니폼을 입었고, 호루라기와 경봉, 까만 선글래스를 갖추었다. 죄수의 심리적 위축과 교도관의 ‘완장’ 행태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유니폼이나 선글래스는 개인의 정체성을 가리기 위한 장치였다. 정체성의 상실은 죄수에게는 무력감, 교도관에게는 우월감을 갖게 했다. 특히 교도관의 얼굴과 눈빛을 가린 선글래스는 죄수의 불안과 교도관의 공격성을 자극했다.

■이 실험은 ‘익명성’(匿名性)이 인간의 공격적 본능을 얼마나 부추기는가를 보여준다. 이름을 숨기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감추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자, 사회적 비난이나 형벌을 피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런데 범죄에 흔히 쓰이는 선글래스나 복면, 가면 등은 얼굴을 가리기 위한, 즉 ‘익면성’(匿面性) 획득을 위한 도구다.

최근 사이버 폭력 관련 토론회에서는 사이버 폭력이 바로 이 ‘익면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예 몸을 다 감춘 영화 속의 투명인간은 짓궂기는 해도 착하기만 한데….

황영식 논설위원 mailto: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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