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은행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보고서는 주택시장이 이미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국과 서울의 가격지수 모두 전년 동기대비 0.7% 떨어졌으며, 서울이라 해도 강남권 아파트만 1.9% 올랐을 뿐 강남의 단독 및 연립, 강북의 모든 주택유형은 값이 내렸다.
전세가격은 전국적으로 1년간 4.3% 내렸고, 서울은 무려 7.3% 떨어졌다. 이외에도 2004년 이후 주택건설 호수가 크게 줄었으며, 미분양 물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어 2000~2003년 간의 호황 추세가 이미 끝났다고 해도 빗나간 진단이 아니다.
객관적 통계가 그리는 주택시장의 모습은 현재 논란인 주택문제의 내용과 동떨어진 것이어서 혼란스럽다. 자고 나면 주택가격이 오르고 그 결과 서민들이 크게 고통을 겪는다는 보도나 주장은 주택통계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지역적으로, 주택 유형별로 세분해서 서울 강남, 분당_용인 등 범강남권의 대형 아파트에 국한해 본다면 비로소 가격상승 현상이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전반적인 주택가격은 이미 꺾였는데, 특정지역 특정유형 주택의 가격만 오르는 차별화 현상이 소위 주택대란의 실체이다. 이 차별화는 고소득, 고자산층이 원하는 양질의 주거여건을 갖춘 대형 고급주택이 부족한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전국 냉골속에 강남권만 펄펄
주택시장의 차별화가 정책적 우려의 대상인가? 정부는 그렇다고 생각하고 세제개편에서부터 국세청ㆍ검찰을 동원한 투기단속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강남권의 대형 아파트 가격은 상승세를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만약 경기회복이라도 가시화한다면 또 다른 폭등도 가능하다.
이자율 인상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수요억제 대책은 사실상 없다. 이자율을 올린다고 해도 융자비율이 40%로 규제되고 있는 강남지역보다는 다른 지역의 중산층 차입자에게 더 큰 타격을 줄 뿐이다. 또 전반적인 주택경기는 이미 하락 추세라서 이자율 인상의 거시경제적 부작용도 클 수밖에 없다.
강남 아파트 가격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했던 주택경기 사이클은 대개 2~3년 급등과 6~7년 하향안정의 모습인데, 이는 가격 급등기에 분양된 아파트가 완공되어 시장에 나오면서 가격이 안정되는 식이다.
재건축에 대한 규제나 판교 신도시 평형배분 등을 보면 고급주택의 공급이 계속 억제되고 있어서 차별화가 오히려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서 다각도의 공급확대 정책을 고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 총량적인 건설 호수는 중요하지 않다.
강남의 주거여건을 능가할 수 있는 입지에 고급 대형 주택을 많이 짓지 않는다면 강남주택 가격은 계속 불안할 것이다. 물론 공급확대는 시일이 오래 걸리고 청약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등 진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다.
-집값 잡기보다 시민주거 안정을
보다 근본적으로 애초 강남주택가격을 잡겠다고 덤벼든 것이 좋은 판단이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거의 모든 나라가 주택시장에 간여하지만 임대주택이나마 저소득층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중산층이 쉽게 내집 마련을 하도록 돕는 것이 요체이다.
서울 강남 지역처럼 그 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값을 내리겠다는 정책목표를 세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차별화라는 말 자체가 내포하듯이 강남 주택가격이 올라서 주거가 불안해진 저소득 서민들도 많지 않고, 가격거품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해질 가능성도 없다.
정책개입이 불필요한 상황을 ‘문제’로 규정하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벌인 것은 심각한 정책 실패이다. 정책 방향의 전환과 함께 대통령과 정부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정책책임자에 대한 문책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