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학 총장들이 ‘행정가’라기보다 ‘기업경영자’연 한 것은 10년 안팎의 일이다. 동문 기금을 유치하든, 기업 후원금을 받든 이제는 돈 끌어와 새 건물 많이 짓는 총장이 가장 유능한 총장처럼 되었다.
1980년대 말에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데렉 복 교수는 ‘파우스트의 거래’에서 상업화에 물들어가는 미국 대학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한다. 그가 서문에서 꿈이기에 다행이었다고 묘사하는 장면들은 거의 미국 대학의 현실이거나 한국 대학에도 닥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운동장 시설을 확충하고, 고급의자를 설치하고, 하버드 대학이 고정으로 TV화면에 나오게 하고, 돈벌이가 되는 미식축구 경기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우수한 선수를 스카우트 하는 등 대학 스포츠 프로그램을 광범위하게 개선했다. …이해타산적인 기업에게 하버드 대학 생명과학 연구결과를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을 제공했다.
전세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원격 교육회사를 출범시켰고, 기업들이 하버드 대학에서 광고할 수 있도록 기업 로고를 강의요강이나 교재에 표시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강의실에 광고물을 설치하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상황까지 벌어진다. ‘기여 입학을 위해 하버드 대학의 입학정원 100석을 포기하고, 그것을 최고 입찰가를 쓴 경매자에게 처분하는 일에 동의한다.’
시장은 대학에게 풍요로운 재원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번영과 명성의 청사진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만 그대로 챙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필연으로 경영학이나 생명과학, 의학 등 특정 분야만 혜택을 보고, 당장의 시장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인문사회학, 기초 과학 연구는 무기력해진다.
전인적인 인간을 길러낸다는 고등 교육의 이상은 무너지고 학문 연구의 규범이나 학술공동체의 유대, 또 대학을 향한 대중의 신뢰도 잠식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상업 냄새가 풍기는 대학의 모든 사업을 폐기처분하라고 주문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학이 수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최고경영자 과정의 경우 매우 기초적인 교육을 제공한 뒤 기업에게서 거액의 자금을 받는다든지, 교수들이 연구와 강의에 대한 열정을 버리고 그런 식의 돈벌이에 연연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의 원제처럼 한국의 대학은 지금 시장바닥에 서 있지(‘University in the Marketplace’) 않은지, 과연 한국 대학의 총장들은 대학의 진정한 발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되묻게 하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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