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아 역사 왜곡을 본 후 젊은이들에게 웅혼한 우리 배달민족의 기상을 일깨워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960년대 한국 최초의 SF 만화 ‘라이파이’를 그린 김산호(65) 화백이 한민족 고대사를 상상력을 동원해 200여 점의 그림과 글로 풀어낸 책 ‘치우천황’(다물넷 출판사 발행, 2만5,000원)을 냈다.
치우천황(蚩尤天皇)은 2002년 월드컵 때 응원단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로 사용된 신화 속의 인물로 중국과 한국의 일부 고서에 중국인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黃帝)와 싸워 수없이 이기는 동이족의 군신(軍神)으로 등장한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20여 년 동안 만주와 중국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조선 상고사’‘중국 역사 편람’ ‘한단고기’등 역사서 백여 권을 독파했다.
“치우천황은 전설이 아닌 엄연한 우리의 상고사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치우를 자기네 시조라고 우김으로써 동북아의 맹주였던 고조선, 고구려 역사까지 자기들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2001년 치우천황 왜곡을 끝내자마자 손 댄 것이 고구려사 왜곡이었지요.”
재야 사학계에서는 중국 고서 등에 나오는 동이족을 현재 한국인의 선조로 보고 고조선의 전신이라는 4,700여 년 전 배달한국의 14대 왕 치우를 한국인의 선조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치우에 대해서는 근래 중국이 뒤늦게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섰으나 예전부터도 중국 남부와 동남아 지역의 소수민족 몽족과 먀오족은 치우를 자신들의 시조로 여겨 왔다.
김 화백은 “중국이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만주 지역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한 명분을 쌓으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성공한 만화가였던 김 화백이 붓을 놓고 방대한 고대사 연구에 뛰어든 계기는 70~80년대 중국을 드나들면서 목격한 중국 측의 역사 왜곡 시도였다. “78년 베이징에 처음 갔는데 그 때 이미 중국은 정복자 만주족(청나라)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우고 있었습니다. 이후 오랑캐라고 하던 만주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더니 급기야 티베트, 위구르, 내몽골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역사 왜곡에 나서더군요.”
60년대 ‘ㄹ’자 로고를 새긴 두건과 선글라스를 쓰고 날렵한 제비호를 몰며 지구를 지키는 ‘라이파이’로 명성을 떨친 김 화백은 67년 미국으로 이민 가 ‘샤이언 키드’ 등을 발표하며 활동을 계속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할수록 한국의 역사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북아 지역 우리 고대사는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더군요.”
김 화백은 이미 91년에 회화와 그림을 엮은 책 ‘쥬신제국사’를 낸 바 있다. 이번 책은 그 후속편인 셈이다.
김 화백은 이번에 고대의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살려내기 위해 장면의 성격에 따라 유화, 동양화, 일본화 화풍을 두루 사용해 스펙타클한 화면을 구성했다.
김 화백은 요즘도 경기 용인의 작업실에서 각종 고문헌을 분석하고 역사화를 그린다. “우리는 동포들마저 민족 구심점에서 멀어지면‘조선인’ ‘고려인’ ‘재일동포’ 등으로 구별해 결국은 민족역량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맞서 우리도 동아시아를 호령한 치우천황의 기개를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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