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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오로라 공주' 방은진 감독, 엄정화, 문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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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오로라 공주' 방은진 감독, 엄정화, 문성근

입력
200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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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화면을 보며 방은진(40) 감독이 “OK”를 외친다. 못 들었는지 좀 떨어진 곳에 있던 스태프 한명이 뛰어와 “감독님 OK라구요?” 확인한다. 다시 한번 모니터를 바라 보던 방 감독. “행인이 잘못 잡혔네. 아휴. 이래 놓고 OK라고 했어”라며 햇볕에 발갛게 익은 얼굴을 좌우로 흔든다. 다시 촬영 시작. 지나는 자동차가 화면에 걸려, 배우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너무 천천히 내렸다고, 표정에 긴장감이 없다고, 또 다시 촬영이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로에서 진행된 ‘오로라공주’ 촬영 현장. 방 감독은 조용한 힘으로 촬영장을 이끌었다. ‘목사를 꿈꾸는 형사’라는 희한한 배역을 맡은 문성근(52)은 무척 홀쭉해진 모습이었고 엄정화(34)는 배역에 몰입하느라 표정이 잔뜩 굳었다.

‘오로라공주’는 배우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인데다, 문성근이 ‘질투는 나의 힘’ 이후 3년만의 영화에 복귀하고, 발랄한 역을 주로 맡았던 엄정화가 연쇄살인 용의자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주목을 끌었다.

명계남(53)의 ‘이스트필름’ 제작으로, 살인현장에 남겨진 오로라공주 스티커를 단서로 범인을 쫓는 형사 이야기다. 이날 촬영분은 문성근이 유력한 용의자 엄정화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배우 출신 감독과 일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문성근은 목소리를 한 톤 올리며 대뜸 “무서워요”라고 엄살을 부린다. “감독 본인이 출중한 연기자잖아요. 예를 들어 다른 감독이 ‘살 좀 빼지’라고 하면 ‘해 봤는데도 안 되더라’고 빠져나갈 여지가 있어요. 방 감독은 그런데 ‘문 선배 그래서 배우 하겠어요’라고 쏘아 붙이더라구요. 무서워요.”

방 감독에게는 메가폰 잡은 소감을 물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볼 때 저것만 넘으면 되는데 싶은 지점이 있어요. 그걸 아니까 저는 몰아붙이고, 배우들은 피곤하죠.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옆의 명계남 대표가 “자기가 연기하고 싶겠지. 뭐”라고 걸친 한 마디에는 손을 내저었다.

‘오로라 공주’는 제작자 감독 배우 간의 남다른 신뢰로 만들어지는 영화다. “5년 전쯤, 제가 ‘감독 한번 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잘 할 것 같아서요.”(명계남) “아주 오래 전 EBS에서 녹화 방영한 방 감독의 연극을 봤는데 대단하더군요.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하면 제가 밀리겠죠”(문성근) 그나저나 문성근은 ‘영화계 복귀’라는 말이 좀 불편한 듯 했다. “그간 정치 영역이 생활에까지 확장됐던 것일 뿐, 정치에서 영화로 복귀했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라고 굳이 설명을 달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진짜 파격은 엄정화다. “이번 영화음악을 맡은 친구 정재형을 통해서 굳이 시나리오를 구해 읽고는 역할을 맡았어요. 배역이 너무 어두워서 촬영 시작 후 편히 자 본 적이 없어요. 꿈에서는 늘 쫓기거나 싸우거나 피를 봐요.”

3월14일 크랭크인 한 ‘오로라공주’는 70% 가량 촬영을 마쳤다. 살인을 소재로 하는 터라 장소협조도 쉽지 않았고 번잡한 강남의 밤이 주배경이라 촬영은 꽤나 힘들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제작 당시 서울시와 협의해 청계고가 촬영 허가를 받아냈던 명 대표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찍어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허가가 날지….”라며 걱정스러워 했다. 장마가 겹치면 좀 늦어지겠지만 예정대로라면 ‘오로라 공주’는 다음달 15일 크랭크업 해 10월 개봉한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 '오로라 공주'감독 방은진은

충무로에서는 오래 전부터 방은진 감독의 대단한 ‘내공’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다작에다 완성도도 뛰어난 방 감독의 시나리오에 유명 감독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메가폰을 잡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연극에서 시작해 ‘301 302’ ‘학생부군신위’ ‘산부인과’ 등 10여 편 영화에 출연, 묵직한 연기자로 인정 받던 그가 감독을 꿈꾼 것은 98년 즈음이다.

나이가 들어 마음에 드는 배역이 멀어지고, 어렵게 맡은 작품은 자주 엎어졌다. 그래서 연기이론서를 번역하고 단편영화 쪽을 기웃거리며 감독을 꿈꾸기 시작했다.

4년 전 마르시아스 심의 ‘떨림’을 각색한 시나리오로, 재작년에는 자작 시나리오 ‘첼로’로 감독을 선언했지만 두 작품 다 크랭크인까지 가지 못했다.

“평생 시나리오만 쓰다 끝나겠구나” 싶었다. 멜로물인 ‘첼로’의 시나리오를 본 강우석 감독은 극찬을 하면서도 “여배우에서 여성감독으로 제대로 변신하려면 멜로 보다는 좀 ‘쎈’ 영화를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건넨 시나리오가 ‘입질’이라는 작품이었다.

“내 시나리오도 있는데 굳이 다른 시나리오로 입봉(감독 데뷔) 해야 하나?” 고민하다 한 달 만에 이를 본인 스타일의 ‘오로라공주’로 각색해 냈다.

촬영을 위해 래커차 위에 스무시간 넘도록 앉아있다 동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던 어느 날은 ‘관두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이내 회복되더라고 했다. 우리 영화계에서는 매우 드문, 배우 출신의 괜찮은 여성감독 탄생에 대한 기대가 크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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