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스티븐 스필버그(59) 감독 영화 속의 외계인은 상냥했고 심지어 귀여웠다. 통통한 배를 내밀고 눈을 깜빡이는 ET는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아니라 지구인의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내달 7일 개봉하는(미국개봉 29일) ‘우주전쟁(War of the World)’에서는 다르다. ‘어느날 다리가 셋 달린 정체 불명의 커다란 괴물(트라이포드)이 나타나 모든 것을 재로 만든다’는 시놉시스 상 설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주전쟁’ 속 외계인은 지구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위기에 몰아 넣는다. 개봉에 앞서 스필버그 영화 속의 달라진 외계인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외신과의 인터뷰, 제작노트 등을 통해 살펴 보면 이는 9ㆍ11 테러 이후의 변화다. “이제 괴물을 등장시키기에 충분한 ‘분노’가 내게 생겨났다”고 그는 설명한다.
1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리미어 시사회 때 그는 “1970, 80년대에 이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적당한 때를 만났다. ET처럼 귀엽지 않은 외계인을 만날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인 H. G 웰스의 동명소설(1898) 속 외계인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각 시대의 두려움을 대변했다. 원작 소설 속의 외계인이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을 코 앞에 둔 1938년 영화감독 오손 웰스가 제작한 라디오 방송극은 히틀러에 대한 공포를 외계인으로 표현했다.
53년 제작된 영화는 전후 고개를 들기 시작한 미-소간의 냉전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다. “세상이 불안할 때 ‘우주전쟁’은 다시 세상에 나왔다”는 게 스필버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을 다시 만들게 한 ‘불안’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의 영화는 외계인의 침입 앞에서 어린 아들과 딸을 지키려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남자 주인공을 영웅으로 그리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위기 앞에서, 평범한 아버지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테러라는 위협 속에서 미국이 영화 속 아버지처럼 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을 위협하는 미개한 ‘타자’(테러리스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미국을 강하고 안전하게 지켜 주기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디아나 존스’에서 최근 ‘터미널’에 이르기까지 보여준 스필버그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친구가 없어 거울 앞에서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며 ‘거울 속 스필버그 놀라게 하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학교에 가면 “스필버그,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그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감독이 됐다. 최근 영국의 영화 전문 잡지 ‘엠파이어’(Empire)가 독자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최고의 감독’으로 뽑혔다.
나이가 들어도 그의 녹슬지 않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놀랍다. 오히려 더욱 왕성하게 작품을 내놓는다. 종종 한해에 두 작품을 내 놓기도 한다.
93년 ‘쉰들러 리스트’와 ‘쥬라기 공원’을 몇 달 간격으로 내 놓더니 2002년에도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캐치 미 이프 유캔’을 연출했다. 올해도 ‘우주전쟁’에 이어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을 다룬 작품을 시작할 예정이다.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는 톰 크루즈와 함께 “어린이지만 어른의 가슴으로 사고한다”고 그가 평한 다코타 패닝이 출연한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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