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업적을 가로채 내 것처럼 만들기, 불리한 증거 감춰두기, 과거 잘못은 ‘없었던 일’로 치기…. 과학자들이 정치판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벌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진리를 좇아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 역시 수 많은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기에 온갖 어두운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는 최근 ‘나쁜 행동을 하는 과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과학계의 잘못된 관행에 관한 보고서를 실었다. 과학자들의 ‘고해성사’를 방불케 하는 이 보고서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은 과학자 3,247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자가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될 세 가지 비양심적 행위인 조작(fabrication) 곡해(falsification) 표절(plagiarism) 등 이른바 FFP를 저지른 비율은 극히 적었다. 연구 데이터를 조작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과학자는 0.3%, 자신의 연구 결과와 상반되는 자료를 숨겼다는 과학자는 6.0%였다. 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냥 표절한 이는 1.4%에 불과했다.
가장 흔한 잘못은 ‘연구 진행 과정의 불성실한 기록’으로, 과학자 4명 중 1명이 결과만 중시할 뿐 과정은 꼼꼼히 챙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서 특정 데이터를 지워버렸다는 과학자는 15.3%, 적절치 않은 줄 알면서 잘못된 연구모델을 그냥 사용한 이들도 13.5%에 달했다. 연구비 지원기관의 압력 때문에 연구 방법, 심지어 결과까지 바꿨다는 양심불량 과학자도 15.5%나 됐다.
부정행위의 유형은 경력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1999~2001년 첫 연구비를 받은 ‘중견급 과학자’들의 경우 박사 후 연구원 등 ‘젊은 과학자’에 비해 연구비 지원자의 압력과 요청에 쉽게 손을 드는 경향을 보였다. 보안상 비밀로 분류된 데이터를 논문에 살짝 끼워넣거나 연구 의도와 어긋나는 실험 결과를 빼버리는 일, 논문 저자 이름 등을 엉터리로 집어넣는 경우도 경력이 높을수록 빈번했다. 반면 젊은 과학자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을 묵인하거나 연구 연관자들과 ‘모호한(questionable)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중견 과학자보다 잦았다.
네이처는 “과거 3년 동안 연구와 관련한 비양심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답한 과학자가 33%에 달했으며 경력이 높을수록 부정행위에 무감각했다”면서 “과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연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잘못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과학자는 “잘 보여야 하는 교수의 경력 관리를 돕는답시고 공동 저자에 이름을 올려주거나, 한 가지 연구를 여러 개로 쪼개 더 많은 논문에 게재함으로써 실적을 ‘뻥 튀기’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면서 “시간 부족과 연구비 확보경쟁 등 연구 외적인 스트레스가 이 같은 부정행위를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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