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늙어가고 있다. 2차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60대에 진입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기 시작하는 것이 상징적인 예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는 인구 구성 변화 이상의 사회ㆍ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베이비붐 세대는 고령사회로 진전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선진국들의 인구 증가는 제로에 가깝지만, 평균 수명의 연장과 출산율 저하가 맞물려 60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40년 내 두배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전체 인구에서 60세 이상의 비중이 2000년 16.3%에서 2040년 26%로, 이탈리아는 24.4%에서 46.2%, 스페인은 22%에서 45.5%, 일본은 23.9%에서 44.7%, 중국은 10.1%에서 28%로 늘어날 전망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20세기 후반 세계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생산활동의 중추이자 막강한 소비계층이었다. 때문에 이들의 노동력 상실은 경제력 측면에서부터 변화를 예고한다.
미국에서 1945~64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7,7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지만, 그들이 보유한 자산은 미국 전체의 67%, 소비지출은 55%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활동에서 물러난 그들은 이제 노후를 대비해 모아놓은 돈을 쓸 일만 남았다.
MSNBC는 베이비붐 세대는 ‘마케팅의 개척자’였다며 왕성한 구매력을 보유한 그들을 주 소비층으로 하는 실버산업의 발달을 점치기도 했다.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지갑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2001년 2조 5,000억 달러였던 65세 이상 노인의 저축규모가 노령인구의 급증에 힘입어 2012년 10조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델리티 등 미국 뮤추얼 펀드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저축예금을 펀드투자로 전환하기 위한 신상품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일본 소니도 50세 이상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노인대상 마케팅 비용으로 총 2,500만 달러를 지출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가 재앙을 몰고 올 가능성도 크다. 노동력을 상실한 고령인구의 증가는 젊은 노동인구뿐 아니라 정부 재정의 부담을 키울 수 밖에 없다. 현재는 세계적으로 15∼64세 노동인구 9명이 노인(65세 이상) 1명을 부양하면 되지만, 50년 뒤에는 4명의 노동인구가 노인 1명을 책임져야 돼 사회적 갈등까지 우려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출산 장려와 은퇴 연령 연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 미국과 유럽은 사회보장제도에 칼을 대며 퇴직 후 복지혜택을 축소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그레이 파워’는 사회보장 개혁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주식 등 금융시장의 추락 가능성도 제기된다. 제레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현재의 90%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재원은 앞으로 45년간 총 123조 달러에 달한다”며 “이들이 노후를 대비해 일할 때 사 모은 주식과 채권을 한꺼번에 내다팔 경우 주식과 채권의 폭락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력 상실은 중산층의 축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美, 사회보장제 대수술
10년 후 전체 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노인층을 부양하는데 사용해야 할 것이란 충격적인 보고서가 최근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발표되면서 미국 사회복지 시스템에 비상이 걸렸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2015년 노인에게 지출할 자금은 1조 8,000억원. 이는 전체 연산 (3조 7,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노인들을 위해 지출하는 예산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1990년 전체 예산의 29%였던 노령층에 대한 예산은 2000년 35%로 늘었다. 노인들에 대한 지출은 노인 의료보장 등 의료 보조비를 비롯, 공무원ㆍ군인연금, 퇴역 군인들을 위한 건강보험ㆍ연금, 노인들에 대한 난방ㆍ주택지원 등이다.
리처드 잭슨 미국 전략국제문제 연구소 국장은 “젊은이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노인들이 품위 있는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느냐가 미국 정부의 최대 고민”이라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은 2월초 새해 국정연설에서 사회보장 개혁을 2기 행정부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60일간 일정으로 전국 29개 주를 순회하며 주 근로자 계층인 청ㆍ장년층이 반대하는 연금 혜택 축소, 납입금 확대를 골자로 하는 사회보장 개혁안의 불가피성에 대해 입이 닳도록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 사회보장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조만간 정부 재정수입보다 연금지출이 훨씬 늘어날 것”이라며 “2018년부터는 재원 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2042년에는 사회 보장제도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의 연금개혁 방안은 지금까지 직장인들은 근로소득세를 모두 국가가 관리하는 연금에 납부토록 했으나 2009년부터는 그 돈의 3분의 1까지 개인계좌에 분산시켜 주식, 채권들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차 이들이 은퇴할 시점이 되면 충분한 수익을 얻게 하는 동시에 향후 연금재원 부족으로 국가가 지게 될 적자부담을 줄여보자는 구상이다. 개인들이 자기책임에 따라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라는 ‘오너십 소사이어티(Ownership Society)’ 가 이 같은 개혁안의 뿌리이다.
장학만기자
■ 日, 은퇴 늦춰 노동력 충당
정년 퇴직을 했거나 이를 앞둔 일본의‘단카이(團塊)’세대 들에게 제2의 인생이 열릴 전망이다.‘단카이’세대란 종전 전후에 태어난 일본의‘베이비붐’세대로 700 만 명이 넘는다. 다른 해에 태어난 세대들에 비해 20~50% 나 그 수가 많고 자기들끼리 잘 뭉치는 특성이 있어‘덩어리’란 뜻의‘단카이’란 표현을 쓴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일본의 한 중소업체가‘단카이’세대 들을 고용해 성공적으로 새로운 생산조직 라인을 구축한 사례를 소개했다. ‘가토 매뉴팩튜어링’이란 금속 부품 제조업체는 시험 삼아 지역 신문 구인광고에 “60세 이상 열성이 넘치는 사람을 고용한다”는 광고를 냈는데, 주말 근무 직이었는데도 100명이 신청을 했다.
가토는 이들을 보통 근로자 임금의 절반 수준에 고용했다. AWSJ은 가토가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년 전 10%에서 2006년에는 20%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은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해외 이민인력에 의존하기 보단 나이든 사람들의 고용기간을 늘리고 있다.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퇴직 연령을 낮추는 세계적 현상과는 정반대다. 정년은 60세지만 일본 사람들은 일하는 데 열의가 높다. 일본 남자의 71%는 60~64세까지 일하고 있다. 이는 57%인 미국인과 17%인 프랑스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도쿄 게이오대의 아츠시 세이코 교수는 “앞으로 10년 동안 20세 이상 일본인은 320만 명 줄어들지만 고용 연한을 65세로 늘리면 현 660만 명 외에 200만 명의 노동력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단카이’세대가 계속 일을 함으로써 연금 지급 시기가 늦춰져 연금 체제의 부실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이후 60세에 연금 전액을 지급하고 있으나 점차적으로 정년이 늘어나면 2025년에는 65세로 연금 지급 연령이 늦춰질 전망이다.
일본은 2013년까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리거나 퇴직한 노동자를 재 고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지난해 통과시켰다. 노동력도 확보하고 구멍 난 연금 재정도 살찌우는 두 마리 토끼를 추구하는 셈이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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