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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교수의 빛으로 보는 세상] 예술의 신세계 연 자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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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교수의 빛으로 보는 세상] 예술의 신세계 연 자외선

입력
200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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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지구 궤도를 돌던 인공위성이 남극 대기권의 오존층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산소 원자(O) 3개가 붙어 만들어지는 오존(O3)층은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흡수해 지표면에 도달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자외선 가리개’ 역할을 한다.

오존층이 점점 줄어들면 지상까지 도달하는 자외선에 의해 피부암과 백내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 국가에서는 이미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존층이 더 심하게 파괴된다면, 우리는 자외선을 피해 건물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시대를 맞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화학물질에 대해 국제적 규제가 이뤄지고 있어 21세기 후반기에는 파괴된 오존층의 회복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자외선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가리킨다. 파장에 따라 장파장 자외선(UV_A: 320㎚~400㎚), 중파장 자외선(UV_B: 290㎚~320㎚), 단파장 자외선(UV_C: 200㎚ - 290㎚)으로 나뉜다. 태양에서 발생하는 자외선은 대부분 지구의 오존층에 의해 차단되지만, 장파장 자외선과 중파장 자외선의 일부는 대기권을 뚫고 지표면에 도달한다.

고생물학자들은 오랜 기간 광합성 작용에 의해 산소(O2)가 지구 대기권의 주성분이 된 이후부터 자외선이 미치지 않는 바닷속에서만 살던 생물들이 지상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산소로부터 오존층이라는 ‘자외선 가리개’가 형성되고 나서야 생물들의 지상생활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오존층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상으로 올라온 생명체들은 자외선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대기 중 산소로부터 오존층을 만들어 낸 것도 태양에서 온 강력한 자외선이었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강해 각종 화학작용이나 살균작용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식당에서 컵을 살균하는데 쓰는 자외선 살균기다. 살균기의 문을 닫으면 위쪽에 달려 있는 살균용 수은등에서 254㎚ 파장을 가진 자외선이 나오기 시작한다. 컵에 내리 쬔 자외선은 각종 미생물과 곰팡이, 박테리아의 DNA나 RNA를 파괴한다.

살균기 안에 자외선을 방출하는 수은등이 달려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 그러면 사무실이나 거실 천장에 달려 있는 수은등에서도 자외선이 나오는 것 아냐?”라는 의문을 갖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반 조명용 형광등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유리 내부 표면에 붙은 형광체라는 물질에 의해 가시광선으로 바뀐다. 게다가 가시광선으로 바뀌지 않는 여분의 자외선은 형광등의 유리가 흡수해 버린다. 따라서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외선에 의해 살균작용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자외선이 인체에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존층을 뚫고 살아 남아 지표면에 도달하는 중파장 자외선은 우리 체내에 비타민D의 합성을 유도한다. 또한, 우리 피부가 자외선을 인식하게 되면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 차단막을 형성하면서 구리 빛 피부가 된다. 이런 과정을 응용한 것이 자외선 램프로 피부를 태우는 ‘인공 선탠’이다. 물론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선탠도 지나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외선을 과도하게 쬐면 피부에 축적된 멜라닌 색소가 피부암의 원인이 되는 악성 종양(흑색종)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자외선 덕분에 새로운 예술도 탄생했다. 세계적 관광도시인 체코 프라하의 볼거리 중에 ‘블랙 시어터’라는 마임극이 있다. 배우들이 특수한 형광 안료로 화장을 하거나 이 안료가 발라진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면 ‘블랙라이트’라고 하는 특수조명이 켜진다. 블랙라이트는 이름 그대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빛인 자외선을 방출한다. 이 자외선을 얼굴이나 의상에 묻어 있는 형광 안료에 비추면 온갖 현란한 색깔을 연출하는 것이다. 블랙라이트에서 나오는 자외선이 걱정돼 블랙시어터 공연 관람을 꺼릴 필요는 없다. 자외선 양이 인체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한림대 전자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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