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배아 연구 허용 범위 확대 등을 위한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국민투표 통과에 실패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12, 13일 이틀간 실시된 생명윤리법 개정 국민투표가 투표율 25.9%로 과반에 못 미쳐 부결됐다고 14일 밝혔다. 지난해 제정된 이탈리아 생명윤리법은 배아 연구와 난자ㆍ정자 기증을 금지하고 불임치료를 위한 시험관아기 시술에서 만드는 배아 수도 매회 3개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도 가장 규제가 심한 편이다.
로이터 통신 등은 이번 투표에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 시험대”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투표율 저조는 투표 거부를 촉구한 가톨릭 교회의 영향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1974년 이혼을, 81년 낙태를 합법화함으로써 엄격한 가톨릭 교리로부터 거리를 유지해온 이탈리아에서 생명윤리법 개정 문제는 가장 민감한 논쟁거리였다. 이 때문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국론을 양분할 우려가 있다”며 자신의 투표권 행사 여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영국 BBC 방송 등은 가톨릭의 투표 보이코트를 지지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정치적 승리로 풀이했다.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은 “도덕적 양심과 인간의 미래가 진정한 승리를 거뒀다”고 말했다.
바티칸선교통신사 피데스(Fides)는 “가톨릭 교회가 근본 가치를 위해 단결했다”며 가톨릭의 영향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했다.
생명연구 범위 확대에 대한 논란의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4분의1만 투표했으나, 투표 참가자의 80~90%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법안 개정을 요구하는 정치적 결집력도 만만치 않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