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정가 및 외교가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중단을 결단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고 있다.
집권 자민당 내의 역학관계와 여론의 흐름으로 보아 고이즈미 총리는 더 이상 참배를 강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참배 중단을 외교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4일 도쿄의 외교소식통들은 “고이즈미 총리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결단을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최악의 경우 ‘사적 참배’를 앞세우며 임기 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관철할 생각이었지만 자민당 내 핵심 원로 및 중진의원들, 또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든든한 보루였던 일본유족회 등 지지층 마저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고 소식통들은 입을 모았다.
더욱이 이날 발표된 NHK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49%)이 한달 전에 비해 3% 포인트나 떨어지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멈춰야 한다’는 의견도 49%(‘참배해야 한다’ 38%)에 이르고 있다. 극우 보수지인 산케이(産經)신문을 제외하고는 언론들도 ‘국익을 고려한 참배중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식통들은 “한국이나 중국 등 외국정부의 요구에 의해 참배를 중단 당하는 모습은 피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측은 참배 중단을 결단할 경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사 결단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임기내에 참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시각도 힘을 얻고 있다. 자민당의 대부분 인사들은 참배가 다시 한번 이루어질 경우 주변국과의 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총력을 기울여 저지하려 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최측근인 야마사키 타쿠(山崎拓) 전 부총재도 겉으로는 “총리는 참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지만 참배중지를 유도하려고 애쓰고 있다.
‘포스트 고이즈미’를 겨냥해 펼쳐지고 있는 자민당 내의 권력투쟁도 참배 강행을 어렵게 한다. 고이즈미 총리에 눌려있던 각 파벌들은 야스쿠니 문제를 계기로 “이웃 국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연대하고 있다.
“내가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한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자인 아베 신조(安倍晉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가 표적이다. 자민당내 실력자들은 51세의 아베 간사장 대리가 총리가 됨으로써 초래되는 세대교체를 강력히 저지하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아베 간사장 대리가 고이즈미 총리에게 ‘참배 중지’를 요구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중의원 의장에게 “신중하기 바란다”고 비판하자,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선배를 비판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것이 상징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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