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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허술한 수사, 비극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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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허술한 수사, 비극 불렀다

입력
2005.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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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생의 어린 딸을 납치해 살해한 유괴범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아이가 살해되기 전에 공범 1명을 붙잡았으나 무혐의로 풀어주는 우(愚)를 범해 결과적으로 여아 살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노모(33)씨는 알고 지내던 정모(33)씨와 함께 10일 오후 3시35분께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서 동네 미술학원을 가던 초등학교 1학년 김모(7)양을 차량으로 납치했다. 노씨는 납치된 김양의 아버지(34ㆍ주유소 경영)와는 초등학교 동창 사이며, 2년 전 김씨에게 빌린 사업자금을 갚지 못해 빚독촉을 받았다.

공범 1명 검거 범인들은 김양을 납치한 뒤 범행을 분담, 노씨는 김양을 차량에 태우고 경기 이천시로 갔고, 정씨는 김양의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다. 정씨는 이날 오후 4시20분께 서울 강동구 한 공중전화 부스에서 김씨에게 “1억5,000만원을 가져오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등 장소를 옮겨가며 7차례 전화를 걸었다.

김양의 부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뒤 돈을 갖고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으로 나갔으며, 정씨의 전화 지시에 따라 장소를 옮겨 다니며 기다렸다. 하지만 정씨는 부근에 경찰이 있는 것을 알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잠복 중이던 경찰은 약속장소 부근을 수색하던 중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정씨를 발견하고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했다. 정씨는 연행되면서 노씨에게 전화를 걸어 술 약속을 하는 등 횡설수설했고, 노씨는 정씨가 경찰에 검거된 것을 알아채고 잠적했다.

무혐의 석방 경찰은 1시간 가량 조사했지만 정씨가 혐의를 부인하고 증거도 없어 석방했다. 정씨는 경찰서를 나와 노씨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아이를 풀어주고 도망가라’는 글을 남겼다. 노씨는 정씨가 연행된 후 4시간 가량을 김양과 함께 있다가 범행이 실패로 끝났다고 판단, 11일 오전1시께 경기 이천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김양을 목졸라 살해하고 오전 3시께 인근 야산에 유기했다.

경찰은 12일 낮12시 범인이 공중전화를 사용한 시간대에 인근에 설치된 한 현금지급기 폐쇄회로(CC) TV에서 정씨가 전화를 거는 모습이 촬영된 것을 보고 정씨를 용의자로 지목, 재검거에 나섰다.

휴대폰 추적 경찰은 정씨의 휴대폰 추적을 통해 12일 오후11시 경기 이천시의 한 PC방에서 정씨를 검거했으며 함께 있던 노씨도 붙잡았다. 경찰조사 결과 노씨는 7일 정씨를 만나 “김양의 부모에게 돈을 받아내면 절반을 주겠다”며 범행을 공모한 뒤 납치장소를 물색하고 이후 경로를 짜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씨는 경찰에서 “김씨로부터 빌린 돈 5,000만원을 아버지가 대신 갚았고 김씨가 이 과정에서 채무이행을 독촉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홧병을 얻어 돌아가셔서 원한을 품었다”고 주장했으며 “내 얼굴을 알고 있는 김양이 갑자기 소리를 치면서 울어대는 바람에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노씨에게 돈을 빌려줬으나 사업에 실패해 돈받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고, 평소 딸이 노씨를 삼촌으로 부르고 잘 따랐기 때문에 설마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흐느꼈다.

김양의 시신은 13일 오전6시 이천 야산에서 발견됐으며, 서울강동경찰서는 노씨와 정씨에 대해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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