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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엄마·아빠는 변덕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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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공부야 놀자/ 교육칼럼 - 엄마·아빠는 변덕쟁이

입력
2005.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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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는 한 마디로 예측불가의 성격이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에는 괜찮다고 하더니만, 성적이 오르니까 일등도 아닌데 뭘 자랑하느냐고 되레 비웃는다.”(고2 학생)

똑같은 일에 대해서 어떤 날은 칭찬하고, 어떤 날은 무관심하고, 또 어떤 날은 심하게 야단치는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모의 일관성 없는 양육 태도는 자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눈치 보게 만들 뿐만 아니라, 도덕성ㆍ사회성ㆍ창의성을 비롯한 갖가지 바람직한 인성의 발달을 저해한다.

부모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를 ‘예측불가, 변덕쟁이’라고 묘사하였다. 또한 아빠와 엄마의 성격이 너무 달라서 누구 기준에 맞추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하였다. 전자는 ‘부모내 불일치(父母內 不一致)’, 후자는 ‘부모간 불일치(父母間 不一致)’에 해당하는데 두 경우 모두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부모내 불일치’ 곧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부(父)나 모(母)의 반응이 때에 따라 다른 것은 부모의 교육 철학이 시대 변화를 유연성 있게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자녀 양육 경험은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자기 연수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과거의 경직된 교육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부모 말씀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말 안 들으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 과외 같은 거 안 해도 공부 잘할 수 있다’는 부모들의 생각은 요즘 아이들의 가치관과 많이 다르다.

부모 말이라도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수용하고, 잘못이 있으면 자상한 대화로 이해시켜 주기를 원하며, 과외를 시켜 주지 않는 것은 가난한 부모의 핑계라고 여기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정서를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모들은 과거와 현재의 갈등 구조 속에서 갈팡질팡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고, 그 사이 아이는 저만치 달아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부모내 불일치’ 현상은 또한 아이의 행동을 꾸준히 관찰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대화할 시간이 부족할 때, 아이의 잠재능력을 믿지 못하여 마음이 조급할 때에도 일어난다. 몇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도 세대차가 난다고 할 만큼 변화가 빠른 시대에 부모와 아이 사이의 대화 시간이 부족하면 가치관의 괴리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아이의 가능성이나 성취 능력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되고 결국 아이에게 예측불가의 행동을 하게 된다. 갑자기 컴퓨터 선을 잘라내고, 핸드폰을 압수하고, 아이를 공부방에 처넣는가 하면,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부(父)와 모(母) 사이에 자녀 교육 방식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간 불일치’는 아이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기 쉽다. ‘부모간 불일치’에서 가장 흔한 유형은 ‘불호령 아버지와 방어막 어머니’인데, 소위 문제아를 상담하다 보면 문제의 배후에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는 대개 자녀 교육을 어머니의 책임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이의 못마땅한 행동을 엄마가 교육을 잘못시킨 탓으로 몰아세우는데, 그 정도가 심할수록 모자(母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늘어나고 아버지는 점차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모자 융합(母子 融合) - 부 격리(父 隔離)의 왜곡된 구도는 가정의 화목을 해치는 결정인자로 작용한다.

부(父)의 권력이 강하고 모(母)의 지위가 열악한 가정에서는 엄마의 자존감이 낮아지기 때문에 자연 자식에게 애착을 보이며 과잉보호를 하게도 된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 비싼 핸드폰이나 오토바이를 엄마가 몰래 사주는가 하면, 놀러나간 아이를 도서관에 갔다고 거짓말로 보호하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 비밀이 너무 많아 불안감이 들 때 엄마는 종종 아이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하여 불벼락을 맞게도 한다. 혼찌검이 난 아이는 아버지를 더욱 싫어하게 되고, 같은 일이 반복되면 점차 엄마와의 친밀감도 약화된다.

자녀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상한 대화로써 지도하는 것은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이다. 부모가 이 같은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여 갈팡질팡 양육 태도의 일관성을 잃게 되면 자녀의 사회적 성숙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렵고, 도덕성이나 창의성 계발같은 보다 높은 가치의 교육 성과는 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인간은 누구나 자아실현경향성에 의해 결국 바람직한 자기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믿음을 부모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 일관된 애정, 그리고 자녀와의 열린 대화가 꼭 필요하다.

/신규진ㆍ서울 경성고 전문상담교사ㆍsir9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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