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뒤틀림과 휘어짐, 그리고 여백. 비누로 빚은 듯 흠 없는 미끈함에 슬쩍 더듬어보고 싶은 유혹을 자제키 어렵다.
세계적인 대리석 조각가인 우르과이의 파블로 아추가리(Pablo Atchugarryㆍ52)가 최근 방한, 서울 청담동 박여숙 화랑에 최근작 20점을 내보였다.
유럽을 오가며 작업하다가 1982년 아예 이탈리아 레코에 정착한 그의 작품은 도시나 공원 등 생활 공간 속에서 빛을 발한다. 우루과이 정부 청사 앞에 설치된 3.9㎙ 높이의 대작 ‘희망의 씨앗’,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빛내는 6㎙가 넘는 작품 ‘새로운 세기의 오벨리스크’(2001년) 등 그의 작품들은 유럽, 라틴아메리카 도시 곳곳의 빌딩, 자연들과 어우러져 있다.
이번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50cm짜리 소품부터 2㎙ 남짓 높이에 이르는, 비교적 작은 작품들이다. 작은 만큼 정교하고 동적이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남녀 형상의 한 작품은 측면에서 보면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탐스럽다. 시선을 옮기면 전체가 춤추는 여자처럼 요염해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작품 명은 모두 ‘무제’다.
“나보다 거대하고 단단한 대리석을 마음껏 주물러 보고 싶었어요.” 그가 본격적으로 대리석 작업을 한 지도 26년이나 됐다. 원하는 부분을 잘라먹어 만들다 버린 적도 수 백번이 넘는다는 그다.
이제는 스케치 드로잉을 따로 하지 않고 직접 떠오르는 대로 대리석에 밑그림을 그릴만큼 대리석과 친해졌다고 한다. “이 작품은 꽃과 식물의 추상이에요. 숨쉬는 대리석.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이 내 손을 거치면 식물이 돼서 숨을 쉬는 것, 신비하지 않아요?”
그랜드 캐년의 장엄함에 매료돼 며칠이고 그것만 바라보다가 돌아오기도 한다는 그는 “세상에 숨 쉬는 것들은 언제가 다 사라지지만 내 작품은 언제까지나 숨을 쉴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대리석 작업은 그렇게 영원한 생명을 창조하는 일이다. 전시는 30일까지. (02)549-7574.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