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민간 정부가 부활한 이후 개발독재 시대의 잘못된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개혁 작업이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개발독재 시대의 생각과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과거의 잘못된 유산을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확대 실시하고 있는 것이 있다. 국토 개발, 정확하게 말하면 국토 파괴 정책이 그것이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보다 그 후에 국토 훼손이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91년에 지방자치가 부활되어 토지 개발 관련 권한이 지방자치단체로 대폭 이관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크기만 다를 뿐 전국의 모든 중소 도시가 초고층 아파트와 빌딩으로 정신 없는 서울의 축소판처럼 되었다. 지방자치는 당연한 것이기는 하나 환경 보호에 관해서는 좀더 엄격한 표준적인 중앙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무분별 개발 땅값만 들썩
중앙 정부도 개발중독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개발독재 시절에 만들어 놓았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민간 정부 등장 이후 대폭 해제되고 있으며, 간척 사업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현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목표로 행정중심복합도시, 전략산업 특화지구, 산업클러스터, 혁신 클러스터, 과학기술 허브도시 등 수많은 장밋빛 이름을 붙여 전국의 모든 지역을 개발하는 국가 균형 발전 5개 년 계획과 지역 혁신 발전 5개 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전국 곳곳에 투기 열풍이 불어닥쳐 땅값이 폭등하고 있다. 이러면서 집값을 잡겠다고 하니 말을 거꾸로 타고 돌격 앞으로 하는 격이다.
이제는 국토에 관한 기본 정책을 개발에서 보전과 복원으로 바꾸어야 한다. 과거 고도 성장 시대에는 공업화와 도시화를 위하여 국토의 광범위한 개발이 불가피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매년 10% 가까운 성장률을 자랑하던 고도 성장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연 경제성장률이 5% 정도면 만족하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금리 시대가 저금리 시대로 바뀐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제는 고도 성장이 아니라 안정 성장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안정 성장 시대에 정부 주도의 국토 개발은 땅값 폭등의 부작용만 낳고 산업 발전이라는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앞장설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들이 어려울 때 정부가 뒤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족하다. 민간 부문의 수요도 없는데 정부가 돈을 들여 건설하면 400억원 들여 건설한 지 2년도 안 되어 문 닫은 경북 예천 공항 같은 꼴이 된다. 정부의 국토 개발 계획은 건설업자와 지주, 토지투기자만 좋아할 것이다.
이제는 자연을 개발하는 대신 잘 보전하고 복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유리한 시대가 되었다. 갯벌을 간척해서 팔리지도 않을 쌀을 생산하기보다 갯벌을 그대로 두고 어업과 관광업을 운영하는 것이 주민 소득에도 훨씬 유리하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더욱 찾게 되므로 자연을 잘 가꾸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다.
부자들은 황폐한 나라를 떠나서 아름다운 나라로 몰려든다. 외국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은 앞으로 가장 큰 국가 자산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국토는 앞으로도 무구한 세월 동안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더 없이 소중한 터전이다. 이를 파괴하는 것은 자손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자연이 곧 자산" 알아야
정부는 국토 개발 계획을 국토의 보전과 복원 계획으로 바꾸고, 건설교통부, 농업기반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등 개발 기관들의 기능을 보전과 복원 중심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청계천 복원 사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복원 공사도 개발 못지않게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할 것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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