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이달 들어 EU 헌법 비준 문제로 이견을 노출하더니 EU 예산안을 놓고는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외교가에선 21세기 영불전쟁이 시작됐다는 비유도 나온다.
시라크 대통령은 9일 블레어 총리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는 이날 EU 순번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영국의 친구들이 이제 EU와 연대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가 왔다”고 비난했다.
이는 영국에 EU 분담금 환급 포기를 요구한 것이다. 영국은 1984년부터 해마다 EU 분담금 가운데 56억 달러를 돌려 받고 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경제가 어려운 점이 감안된 조치다. 이 규모는 영국 분담금의 3분의 2 수준이다. 다른 24개 회원국은 영국의 경제가 좋아졌다며 환급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발언은 유럽통합 궤도이탈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쏟았던 시라크 대통령이 블레어 총리가 비준 국민투표 연기를 발표하며 찬물을 끼얹은 것에 대한 보복인 것으로 해석된다. .
하지만 블레어 총리는 즉각 반박했다. 그는 “환급을 받으면서도 영국은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가 해온 기여의 2.5배를 기록했다”면서 “오히려 환급이 없었더라면 프랑스의 15배를 기여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블레어 총리는 또 “EU 지출이 공동농업정책에 너무 집중돼 있다”며 프랑스에게 역공을 취했다.
유럽 최대 농업국인 프랑스는 분담금도 많이 내지만 농업 지원금도 많이 챙겨가는 최대의 혜택 국가다. 보조금도 2012년까지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프랑스의 입김으로 EU는 올 예산 1,275억 달러 가운데 600억 달러를 농업 예산으로 배정했다.
영국은 환급 혜택을 보장하지 않으면 16~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정상회담에서 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8일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적용될 EU 예산안(총 8,400억 달러)은 EU의회를 통과해 정상회담에서 최종 확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0일 “블레어 총리는 환급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각국 정상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라며 “EU헌법을 연기하면서 빈축을 사고 있는 영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완벽히 고립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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