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숲에는 거북이가 없다 / 로이스 로리 지음. 신남희 옮김. 양철북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줄거리가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등장인물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책도 있다. 그런데 줄거리는 시간이 가면 큰 줄기만 남고 세세한 것은 사라지지만 인물은 세월이 가도 선명하게 살아남는다. ‘빨강머리 앤’의 앤이나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그 숲에는 거북이가 없다’의 엘리자베스도 그럴 것 같다. 고집 세고 맹랑하지만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많은 여섯 살짜리 아이. 항상 정돈되어 있고, 교양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집보다 왁자지껄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생기가 넘치는 아이. 새로 만난 찰스와 팬티를 내리고 서로 자기 것 보여주는 것으로 서먹함을 단숨에 뛰어넘는 아이.
보이는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 의문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때때로 어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아이. 그러나 그 나이의 특징인 자기중심적인 면도 갖고 있어 읽다보면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아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아버지가 참전하게 되자 엘리자베스와 언니, 엄마는 공습 위험이 있는 뉴욕을 떠나 펜실베이니아의 오텀 거리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생활은 여섯 살 난 아이에겐 이해하기 힘든 것이 많다. 아빠를 멀리 데려가고 어린 마음을 설레게 했던 사촌 오빠를 병원에 입원하게 만드는 전쟁, 자기와 흑인 남자 친구 찰스를 갈라놓는 차별의 규칙들, 같은 백인이어도 어울리지 않는 가난한 이웃과 소외되는 떠돌이 정신이상자, 전쟁이 나자 사라져버린 이웃의 독일인을 바라보는 편견 섞인 시선,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떠나버린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는 이모할머니, 엄격하기만 한 할머니, 위엄과 권위로 한 집안을 이끌어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힘을 잃고 누워만 지내는 할아버지.
그 중에서도 엘리자베스는 무시무시한 거북이가 산다는 오텀 거리 끝에 있는 숲이 가장 두렵다. 실체를 알 수 없고 막연하기에 더욱 무서운 곳.
그곳은 흑인은 다닐 수 없는 구역에 있기 때문에 찰스와 같이 갈 수도 없는 곳이다. 항상 자기 처지를 묵묵히 받아들이던 찰스였건만 그날 면전에서 모욕을 당하고는 그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그 숲에서 찰스는 참극을 당하고 만다.
작가는 여섯 살 소녀의 눈으로 세상을 그리기 때문에 전체 모습을 보려면 독자의 세심하고 비판적인 눈길이 필요하다. 이 책을 사건 중심으로만 따라가면 놓치는 것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얼핏 아름답게만 채색된 기억의 뒤편에 얼마나 냉정한 현실도 있는지 청소년 독자들이 느낀다면 지금의 어려움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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