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정남(63)씨가 5ㆍ16 군사쿠데타부터 6월 항쟁까지 30년 가까이 민주화 운동의 큰 사건들의 진상을 소개한 ‘진실, 광장에 서다’(창비 발행)를 냈다. 김수환 추기경이 추천사에서 “마땅히 써야 할 사람이 썼구나”라고 한 것은 1964년 6ㆍ3사태 배후 인물로 구속된 이후 군사독재 종식 때까지 갖은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언제가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사건과 인혁당사건의 진상조사 및 폭로, 김지하 양심선언 발표, 보도지침 폭로 등을 주도했고, 김지하 반공법 위반사건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변론요지서,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 변호인 항소 이유서 등을 썼다. 책에는 ‘투사’의 글답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현장의 뒷이야기가 적지 않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폭로나 김지하 양심선언에는 교도관 전병용씨의 역할이 컸습니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이부영이 박종철 고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잡혀온 경찰관의 억울한 사정을 취재해 외부로 알릴 수 있었던 것도, 사형의 위기에 몰린 김지하를 양심선언으로 구하려는 작전 과정에서 종이와 필기구를 건네고, 선언 초고를 김정남씨에게 전한 것도 전씨였다. 그는 김씨가 “60년대 수감 중 사형수들에게서 건강법으로 배운 겨울 냉수 마찰하는 걸 경외심을 가지고 살펴보던” 교도관이었다.
책에는 전태일, 리영희, 김상진(서울대 농대 학생), 김경숙(YH무역 노동자) 등 민주화운동의 전선에서 고난 받았거나 스러져간 사람들과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함평고구마사건, 크리스챤아카데미사건, 남민전, 사북노동항쟁, 부산 미문화원 방화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는 가톨릭 월간지 ‘생활성서’에 1999년 2월부터 5년 넘게 연재할 때부터 “민주화운동세력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민주화운동세력은 민주화라는 목표를 향해서 달려오다 보니까 경륜이 없는데다 맹목적이기 일쑤입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의 결실을 갖는 처지라면 더 잘 해야 하는데, 민주화운동세력의 약점을 한꺼번에 조합해서 다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민주화운동의 기본을 도덕성”이라고 보는 그는 “지금은 도덕성이 퇴색하거나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 관련 보상법을 제정해놓고 재빨리 제가 먼저 보상금을 타먹는 것을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단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홍남순 변호사는 광주민주화운동 피해 보상 신청을 하라니까 ‘죽은 사람들한테 부끄럽다. 내가 한 게 뭐 있나’고 잘라서 말하더랍니다.
보상금 타기 위한 증거를 대자고 얼른 가서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병원 진단서 떼 오는 사람이나, 민주화운동 경력을 빌미로 현직(顯職)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눈꼴이 시립니다.” 보상금 타는 사람을 싸잡아서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다들 ‘재야민주화운동의 대부’라고 부르는 그는 보상금 신청을 하지 않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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