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독일로.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낸 본프레레호는 이제부터 정확히 1년 앞으로 다가온 2006독일월드컵 본선에 대비,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독일월드컵 본선은 내년 6월10일(한국시각) 뮌헨에서 개막전을 시작으로 6월24일까지 조별리그, 25일부터 7월10일까지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본선 티켓의 주인공은 11월께 모두 가려지며 12월9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본선 조추첨이 열린다.
본선 티켓을 거머쥐고 10일 개선하는 태극전사들은 일단 해산, K리그 등을 치른 뒤 내달 31일부터 국내에서 열리는 제2회 동아시아선수권에 대비해 7월말께 다시 소집될 예정이다. 동북아 최강을 가리는 동아시아선수권에는 한국 일본 중국 북한이 참가하며 북한과는 93년 월드컵예선이후 12년 만의 남북한 A매치대결이 펼쳐진다. 이후 8월17일 사우디와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6차전을 제외하면 대표팀의 일정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이에 따라 대한축구협회는 일단 동아시아선수권을 치른 뒤 K리그 일정을 감안해 대표팀 전지훈련과 향후 평가전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협회 대외협력국은 9월 A매치 데이 때는 K리그 및 FA컵 일정을 감안해 평가전을 갖지 않고 10월과 11월에 각각 유럽팀들을 대상으로 평가전을 치르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본프레레호는 내년 초 유럽행 전지훈련을 실시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6회 연속 본선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축구 팬들의 높아진 눈높이와 2002한일월드컵 4강국의 자존심을 곧추세우기 위해서는 아직 본프레레호가 갈 길은 멀다. “앉아서 쉬지는 않겠다. 계속 가능성 있는 선수를 발굴하겠다”고 본선 진출의 소감을 밝힌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말처럼 인재발굴과 훈련강화, 효과적인 전지훈련 및 평가전을 어떻게 치러내느냐에 따라 독일월드컵 본선무대에서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넘쳐 나는 공격수 자원에 비해 절대 공급이 모자라는 수비진의 극심한 불균형 해소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본프레레 감독은 선수 및 축구 팬들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색깔 없는 축구 또는 전술 부재에 대한 대안책이 필요하고, 사우디 원정 패배이후 책임을 선수들에게 돌리는 듯한 회피성 발언 등은 앞으로 자제돼야 한다.
앞으로 아시아 맹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럽, 남미의 정상급 팀들과 잦은 평가전을 통해 본선 경쟁력을 미리 다져나가는 것도 필요조건이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은 만큼 K리그에서 좋은 선수들을 더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수비수 위주로 선수발굴에 힘쓰겠다”고 설명했다.
여동은 기자 deyuh@hk.co.kr
■ 골폭풍… 폭염도 모래바람도 날려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폭염도, 시야를 흐리는 거센 모래바람도 태극 전사들의 진군을 막지 못했다. 축구천재 박주영의 발끝에서 시작된 골 퍼레이드는 이동국 정경호 박지성의 릴레이골로 이어지면서 중동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1980년 이후 무려 25년만에 쿠웨이트 원정에서 쏘아 올린 값진 승리였고, 선수들은 물론 본프레레 감독조차 예상하지 못한 대승이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9일 새벽(한국시각) 쿠웨이트시티의 알 카즈마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쿠웨이트와의 5차전에서 4-0으로 압승했다. 당초 고전이 예상된 이날 경기는 박주영의 신기에 가까운 감각적인 선취골 덕분에 매듭이 쉽게 풀렸다.
박주영 이동국 차두리를 최전방 스리톱으로 내세운 본프레레호는 경기 시작과 함께 좌우측면 돌파가 살아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선취골은 전반 18분 박주영의 발끝에서 터져나왔다. 이영표가 수비 뒷공간으로 찔러준 스루패스를 김동진이 이어받아 왼쪽 측면을 돌파한 뒤 직각 크로스를 올렸고, 문전으로 달려들던 박주영은 오른발 터치 슛으로 연결, 네트를 갈랐다.
박주영의 움직임은 갈수록 기민해졌다. 전반 28분 김동진의 왼쪽 크로스를 이어받아 문전으로 치고 들어가면서 골키퍼와 1대1 상황을 연출, 상대 수비수의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이동국이 침착하게 골키퍼 반대편으로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한국은 2-0으로 앞서갔다. 이 때부터 쿠웨이트 관중석에서 물병이 마구잡이로 날아들어 경기가 중단됐다. 경기 감독관이 상황을 진정시킨 뒤 12분만에 재개된 경기에서도 태극 전사들은 뜻하지 않은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는지 더욱 활기를 띠었다.
한국은 후반 8분 차두리 대신 정경호를 투입하면서 골행진을 재개했다. 정경호는 교체된 뒤 2분만에 팀의 세번째골을 신고했다. 이동국이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건네준 볼을 이어받아 문전 중앙쪽으로 쇄도하면서 수비수 한명을 제친 뒤 오른발 강슛으로 골문을 흔들었다.
골퍼레이드의 대미는 박지성이 장식했다. 박지성은 후반 16분 상대 골지역 오른쪽에서 수비수 한명을 드리블로 제친 뒤 엔드라인 근처 사각 지역에서 반대편으로 크로스를 올리는 척하면서 상대 골키퍼를 완전히 속인 뒤 골문 안쪽으로 재치있게 슈팅을 날렸다.
/쿠웨이트시티=박진용기자
■ 54년 첫 노크… 2002년 꿈의 4강
눈물과 환희로 점철된 한국의 ‘월드컵 오디세이’는 악몽이라는 이름으로 그 서막을 연다. 1954년 한국축구팀은 전후의 잿더미속에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축구공 하나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목표 하나로 스위스 월드컵 본선무대로 떠났다. 하지만 헝가리에 0-9, 터키에 0-7로 완패, 잔뜩 고개 떨군 채로 고국 땅을 밟았다. 이후 수차례 월드컵 본선 문을 두드렸지만 ‘꿈의 무대’는 한국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기회는 왔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 도전 32년 만에 1986년 멕시코 대회 티켓을 따냈다. 그러나 환호는 이내 장탄식으로 바뀐다. 1무2패로 예선 탈락한 것이다. 4년후 한국은 이탈리아 대회에 출전했지만 3전 전패의 수모만 안고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암흑의 터널은 길었다. 94년 미국, 98년 프랑스 대회 출전 자격을 따내면서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매김했지만 본선 무대만 밟으면 번번히 맥없이 무너졌다. 특히 98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에 0-5로 참패, 대회 중 감독 경질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칠흑의 어둠을 뚫고 나온 햇살은 눈부셨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은 한국축구가 영원히 잊지 못할 해가 됐다. 조별 예선 첫 경기 폴란드 전에서 월드컵 첫승(2-0)을 따낸 한국은 이후 미국과 1-1 무승부, 포루투갈에 1-0 승리를 거두며 당당히 조 1위로 16강에 진출, 한국 축구의 벅찬 새날을 열었다. 질풍노도가 된 태극전사는 축구 강호 이탈리아, 스페인을 거푸 격파하며 꿈의 4강 무대에 입성했다. 그 해 6월 한반도는 붉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 요란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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