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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받았어도 죄는 없다?

입력
2005.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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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 업무와 관련해 돈을 받았을 때 통상 적용되는 배임수재죄 관련 사건에 대해 법원이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도 ‘청탁’의 범위를 매우 좁게 해석, 잇따라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연이은 무죄 선고에 “민간분야의 부패는 수사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구지법은 8일 서울 잠실야구장 옥외광고물 사업권을 따내도록 해준 대가로 특정 광고업체에게서 1억원 가량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국 사무총장에 대해 “돈 받은 사실이 있고 광고업자와 계약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맞지만 사무총장의 업무와는 다르고 특혜를 준 사실도 없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총장이 광고계약 단가와 연계해 일정비율로 돈을 받아 왔다는 사실까지 제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에 앞서 법원은 지난해 정보화촉진기금 비리사건에서 관련업체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주식을 받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담당 직원 5명에 대해 항소심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해 검찰이 상고했다.

법원은 “잘 부탁한다”는 업체 관계자의 청탁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라며 “명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 직원 중에는 주식을 팔아 8,000만원의 차익을 챙긴 사람도 있었다.

법원은 또 지난해 구청장 후보 공천 대가로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에 대해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해 검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공무원의 뇌물죄는 청탁이 없더라도 직무 관련성만 인정되면 유죄가 되지만 배임수재는 ‘부정한 청탁’이 전제가 돼야 하기 때문에 무죄선고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대법원 판례는 배임수재 요건이 되는 ‘부정한 청탁’에 대해 ‘꼭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고 넓게 해석하고 있는데도 하급심에서 이에 반대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며 “돈을 주면서 얼마나 구체적인 청탁 단어를 선택해야 유죄가 된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납품업체에서 1,400여만원을 받고도 1ㆍ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포항제철 전 간부에 대해 “묵시적인 청탁도 청탁이기 때문에 배임수재가 인정된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한 바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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