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발견! 지뢰 발견!”
7일 오후 1시 경기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백학저수지 앞 야산. 지뢰덧신을 신고 30여㎙ 간격으로 일렬로 늘어선 8명의 병사들이 낚싯대 모양의 지뢰탐지기를 들고 땅 위를 훑으며 지나가자 갑자기 ‘우우웅’ 하는 소리가 났다. “지뢰를 발견했다”는 한 병사의 외마디에 전 부대원들이 작업을 일시 멈췄고 곧바로 소대장이 달려와 해당지점에 석회가루를 뿌려 지뢰가 탐지된 위치를 표시했다.
병사는 반경 3~4㎙ 지역을 추가 수색한 뒤 탐지기의 반응이 없자 일단 뒤로 빠졌고 이내 다른 병사들이 강력한 바람을 내뿜는 공압기 호스를 들고 나타났다. 석회가루 위쪽으로 수분간 바람을 내뿜자 굉음 속에 흙이 파헤쳐지면서 깊이 10㎝가량의 작은 구멍이 생겨나고 지뢰의 한쪽 귀퉁이가 나타났다. 수십년간 묻혀있던 지뢰가 발견되고 제거되는 순간이었다.
육군 1군단 광개토공병부대가 4월28일부터 경기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와 백학면 노곡리 및 두일리의 민통선 이남 지역 6만여㎡에 대해 지뢰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내심으로 버텨야 하는 지뢰제거작업은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입한 상황에서 극도의 긴장감 속에 한발짝 한발짝 조심스럽게 진행되고있다. 자칫 땅에 묻힌 지뢰가 터져 폭발할 수도 있어 작업시간 내내 전 병사들은 숨을 죽이고 탐지기의 반응을 주시한다.
지뢰제거작업은 연천군과 육군에서 총 9억여원을 들여 11월말까지 대상지역에 매설된 지뢰를 완전 제거한다는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지뢰로 인한 사고는 모두 28건으로 그 중 4명이 목숨을 잃었고 42명이 부상했다. 특히 이 지역은 도로변 마다 ‘지뢰주의지역’이란 표식이 있으나 민통선 조정에 따라 민간인 출입이 허용된 이후 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의 사고가 잦았다. 이에 육군 측은 300여명의 병력과 굴삭기 공압기 등 37대의 지뢰제거용 중장비를 동원해 지뢰제거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군은 지뢰매설 지역의 나무를 베어낸 뒤 굴삭기 등을 이용해 잡풀 등을 제거해 맨땅이 드러나도록 사전 작업을 해놓았다. 지뢰 폭발시 파편에 의한 부상을 막기위한 보호의와 일명 ‘발목지뢰’인 M14를 견디기 위해 무릎까지 올라오는 지뢰덧신 등 20㎏에 달하는 보호장구는 필수다. 박지원(22) 상병은 “지뢰를 찾아내는 것이 귀중한 인명을 구하는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보물을 찾는다는 각오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목지뢰가 복병이다. 지뢰탐지기는 금속물질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재질이 대부분인 발목지뢰는 좀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발목지뢰의 발견은 불도저처럼 생긴 중장비에 1.5㎙길이의 두꺼운 쇠사슬 40여개가 달려있는 MK4의 몫이다. 이 기기는 쇠사슬을 바람개비처럼 빠르게 회전시키며 땅을 내리쳐 30㎝의 깊이까지 파헤칠 수 있다. 매설된 지뢰는 쇠사슬에 걸리면 그 자리에서 터진다.
이날 탐지병의 수색에 앞서 MK4를 동원, 3~4시간 동안 샅샅이 파헤쳤지만 발목지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전 7시부터 일몰 때까지 하루동안 발견된 지뢰는 대인용 폭발지뢰 M2A4 한 개. 그나마 한 개라도 발견한 날은 운이 좋은 편이다.
40여일이 흐른 지금까지 발견된 지뢰는 총 28개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당시와 1960년대 초반 대북경계를 위해 매설된 대인용 폭발 지뢰 M2A4와 발목지뢰 M14 10발, 대전차용 지뢰 M7A2가 16발 발견됐고 불발된 포탄 및 실탄 등도 작업도중 450여 개가 수거됐다. 수거된 지뢰는 폭발물 처리반(EOD)에 의해 안전한 장소에서 폭파된다.
박영준(43) 중령은 “지뢰제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안전에 있기 때문에 지뢰가 더 이상 없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많게는 10여 번에 이르는 재확인 과정을 거듭하고 있다”며“2009년까지 백학면 전동리 등 다른 지역에서도 지뢰 제거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의 희생자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각오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