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너무 별로야. 괜히 봤어.” “그래? 나는 괜찮던데. 우린 취향이 다른가 보다.” 이건 현실 세계에서의 대화다.
‘개쓰레기 같은 영화. 돈 내놔’ ‘영화 보는 눈도 없는 것들이 어디 와서 수작이야’ ‘남극일기 보지 말라는 피켓을 들고 극장 앞에 서 있을까 했다’ ‘댁이나 보지 마세요’ ‘영화가 아니라 개그 콘서트네’ 이건 인터넷식 대화다.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과 주연 배우들은 이제 인터넷 게시판 들어가기가 두렵다고 하는데, 다름 아닌 ‘악플’(악성 리플) 때문이다. 관람료를 지불하고 2시간 가량을 투자해 영
화를 볼 때는 분명 기대치가 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한 경우 비판할 수 있다. 그러라고 있는 게 인터넷 게시판이다. 그런데 제작진이 속상한 것은 비판이 아닌 악플을 위한 악플, 그리고 감독과 배우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 때문이었다.
급기야 제작사는 상습적으로 악플을 올린 이를 추려 사이버수사대에 정식 수사를 의뢰하려 했지만 지금은 “결국 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경고 수준에서 그치기로 했다. 영화의 좋고 나쁨을 떠나, 오랜 시간 이 영화에 피땀을 쏟았던 임감독이 “우리 영화가 이런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지 않냐”고 했다는 소리에 씁쓸하다.
악플의 고통은 안 당해 본 이는 모른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서 난도질 당한 경험이 있는 박찬욱 감독은 그 때의 악몽 때문에 요즘도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고, ‘달콤한 인생’으로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김지운 감독은 임감독에게 동병상련의 위로를 전했다고 한다.
기사를 쓰는 사람도 비슷한 일을 겪곤 하는데,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이렇다. 이 메일을 통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상소리를 심하게 한 사람일수록, 직접 통화를 시도하거나 만나자고 제안하면 선뜻 응하지 않는다. 아마도 상소리의 수위와 실제 생활에서 점잖음의 정도는 비례하는 것 같다.
욕이 스트레스 해소법이듯, 악플로 잠시 즐거울 수는 있다. 하지만 큰 영화를 만들고 유명 연예인이 아닌 당신도 어쩌다 인터넷의 몰매를 맞는 소위 ‘개똥녀’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손가락이 좀 멈칫하지 않는가. 그래도 악플의 유혹을 느끼는가. 눈 앞에서도 당당하게 욕할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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