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는 실향민 아버지 김 노인(신구)을 위해 가족들이 마지막 선물로 통일 자작극을 벌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작극은 사실 아버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기쁨을 위한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큰 아들 명석(감우성)은 아버지 이름으로 숨겨진 50억원 상당의 토지가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러나 ‘쥐꼬리’만한 사채를 갚고도 남을 유산은 김 노인이 통일 이전에 눈을 감으면 고스란히 국가에 헌납하도록 되어있다. 유언장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 통일을 시키는 것.
‘간 큰 가족’은 2003년 개봉한 독일 영화 ‘굿바이 레닌’을 살짝 비튼 듯한 도입부가 일단 눈에 거슬린다. 열혈 공산당원인 어머니를 위해 베를린 장벽 붕괴 사실을 감추는 아들의 눈물겨운 자작극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코미디에서 신파로 널뛰기를 하는, 극단적인 극 전개도 커다란 약점이다. 그러나 ‘간 큰 가족’은 고만고만한 코미디를 넘어서는, 의외로 단단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다소 황당하면서도 기시감을 주는 영화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다. 그 중 신구는 그 오랜 연륜으로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준다. 통일을 알리는 방송소식을 듣고 기쁨과 회한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얼굴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뽀글뽀글한 아줌마 퍼머가 무색한 감우성의 진중한 표정은 이미 코믹 연기의 일가를 이룬 듯한 김수로의 가벼운 몸짓과 어우러져 기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관객들이 배꼽을 잡던 손을 자연스럽게 눈가에 가도록 하는 영화. 그러나 웃음이나 눈물 둘 중 확실한 하나를 원하는 관객들까지 만족시킬 지는 의문이다. ‘깜보’ ‘미스터 레이디’의 조명남 감독. 9일 개봉. 12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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