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9일 전북 군산에서 “선물을 주러 온 게 아니다. 전북 스스로 지역 혁신 역량을 키우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로부터 20일 후인 7월 29일 전남 목포에선 “광주ㆍ전남은 직접 챙기겠다. 큰 판을 벌이겠다”고 했다.
이처럼 대비되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당시 전북의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발끈했다. 한 사회단체는 “노 대통령 발언은 같은 호남권에서도 전북이 홀대되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호남 소외’ 아닌 ‘전북 소외’에 도민들은 섭섭함이나 배신감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에 지역개발 기대는 풍토
뒤늦게 노 대통령을 비판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의 특별한 배려나 결단에 의해 특정 지역의 발전이 크게 영향을 받는 방식이나 풍토를 지속시켜야 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노 대통령이 호언했던 ‘큰 판’이 이른바 ‘S 프로젝트’였나? 그 사건을 지켜보는 전북의 민심은 싸늘하다. 한 지역신문은 “참여정부가 전북을 역차별하면서 ‘전북 무시’를 비판하는 도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전북을 집권 여당의 지지기반이라고 강조해 오면서도 속내로는 광주ㆍ전남에만 사실상의 특혜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나 도민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지역 개발의 원칙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눈엔 오직 유권자로서의 머리 수만 보이는가? 그렇다면 전북처럼 인구가 적은 도들은 앞으로 계속 당하는 수밖엔 없겠다. 전북은 전국에서 최다 인구 유출 지역이다. 1960년대에 250만명대를 넘어섰던 전북 인구는 올 3월 말 기준으로 190만명대까지 무너지고 말았다.
한 동안 중앙 언론까지 나서서 ‘전북 정치인 전성시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유력 대통령 후보, 국회의장, 집권당 원내 대표 등 거물급이 모두 전북 출신이라는 것이다. 전북 지역 언론도 큰 기대를 걸면서 그 사실을 대서특필하곤 했다. 한심하고 딱한 노릇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지역주의 해소책은 한숨을 자아내게 만든다. 너무 정략적이고 편의주의적이다. 원칙에 의한 정공법이 아니라 ‘떡을 주는’ 구태의연한 수법으로 영호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과욕과 환상의 수렁에 빠져 있다.
그래서 은밀하게 추진해야 할 일도 생기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대구 사랑 의원 모임’? 아서라. 그것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동진(東進)’이니 ‘서진(西進)’이니 하는 전략ㆍ전술 차원에서 이뤄지는 방식으론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공평한 게임의 룰을 세우는 것이다. 지금 전국의 모든 지역이 앞 다투어 자기 지역이 가장 못 살고, 가장 차별받고, 가장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른바 ‘우는 아이 젖 더 주기 신드롬’이다. 지금 우리 사회엔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균형 발전의 순차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권위체가 없다.
우는 아이 젖주는 방식으론 안돼
그런 권위체를 키워나가려는 노력이 지역주의 해소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의 정략과 연고가 아니라 공정하고 객관적인 원칙과 기준에 의해 지역 발전 전략이 수립되고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 그런 신뢰의 메커니즘이 구축된다면,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그 지긋지긋한 ‘차별 타령’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신뢰의 메커니즘을 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그 방향으로 돌아서지도 못한 채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면서 지역주의가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발 말로만 ‘시스템’을 외치지 말고 온몸으로 ‘시스템’ 좀 세워 보자.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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