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모든 남녀에게 환상의 대상이다. 실제 관계를 맺어도 그 환상에 대한 갈증은 시들지 않고, 더 강하고 잦은 관계를 통한 욕정의 해갈(解渴)을 요구한다.
세드릭 칸 감독의 프랑스 영화 ‘권태’는 성에 대한 그칠지 모르는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현대인의 권태에 현미경을 들이댄 영화다.
이혼한 40대 철학과 교수 마르땅(샤를르 베를링)은 6개월간 금욕의 시간을 보낸다. 소설을 쓰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사랑은 더 이상 그 연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통해 예술적 승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을 날뛰는 성기와 콩알만한 뇌를 가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는 그에게 어느날 지극히 무의미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사랑이 다가온다. 운명은 알더라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어느 선술집에서 늙은 화가 메여스에게 도움을 준 마르땅은 선물로 받은 누드화에 빠져들고 메여스의 집을 찾는다. 그러나 그는 메여스가 ‘특별한 순간’을 즐기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17세 누드모델 세실리아(소피 길멩)와 대면하게 된다. 마르땅은 세실리아에 병적으로 집착한 메여스를 경멸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육체에 깊숙이 빠져든다.
감독은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도 똑 같은 껍질을 보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양파처럼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가 도를 더하면 더할수록 무의미하고 공허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무의미한 몸짓에서 감독은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권태로운 일상을 포착한다. 영화는 세실리아를 돈으로 소유하려 하는 마르땅의 속물근성과 여러 남자들의 육체를 떠돌려 하는 세실리아의 탐욕을 통해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단조로운 극 전개와 반복되는 침실장면을 통해 우리 생활을 에워싸고 있는 권태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하고 느껴보라고 권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소설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동명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로마제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달리 영화는 현대 프랑스 파리가 배경이다.
남녀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여러 장면과 사실적인 성애 묘사 때문에 2002년 수입추천 불허 판정을 받았지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진한 장면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만하다. 3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무삭제로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1998년 프랑스 루이 델뤽상 수상. 17일 개봉.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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