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작가 박민규씨가 실은 ‘삼미’의 팬이 아니었다는, 이제는 더러 알고 있는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일년 여 전의 일이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던’ 이 만년 꼴찌팀의 연고지 인천 팬들이 그의 소설에 열광한 것이야 불문가지. 인천 와이번스 개막경기 시구자(始球者)로 초청되기도 하고, 경기 뒤 팬들의 강권으로 뒤풀이 자리에 끼어 앉기도 했다고 한다.
그 술자리에서 한 초로의 팬이 작가에게 대뜸 이런 말을 한다. “자네가 작가니까 하는 말이네만, ‘현대’라면 어디가 됐든 글을 주지 말게.” 인천 연고였던 ‘현대 유니콘스’가 2000년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겨버린 데 대한 서운함과 배신감의 발로이자, ‘동지(同志)’에 대한 의리의 주문인 셈이었다.
당시 작가는 현대증권 사보에 원고지 10매짜리 에세이 청탁을 받아뒀던 상태. “그 분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 순수한 것은 없어 보였어요. 냉큼 그러마고 약속을 했죠.” 작가는 끝내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문예지 원고 청탁을 거절하는 유일한 기준이 ‘원고료 과다(寡多)’에 있음을 당당히 밝히는 이 전업 프로작가는, 그 ‘일탈’을 두고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그 약속을 본의 아니게 깨뜨렸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하이닉스’라는 데가 현대 계열사라는 걸 몰랐던 거죠.” 첫 소설집 ‘카스테라’ 출간을 핑계 삼아 7일 함께 한 자리에서 이런 저런 말끝에 이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그는 그 이름 모를 팬에게 정말 미안해 하는 듯 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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